
한 인디언 부족에 도시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새로운 추장이 임명되었다. 평소처럼 부족사람들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땔감을 준비하면 될지 신임 추장에게 물어왔다. 그는 선대 추장들처럼 자연을 보고 날씨를 예측할 수 없었다. 차마 모른다고 대답할 수 없던 추장은 넉넉한 것이 부족한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작년보다 조금 더 많이 준비하라”
확신이 없던 추장은 기상청에 몰래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었다. “이번 겨울 얼마나 추울까요?” 기상청 직원은 '작년보다 더 추운 겨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답변하였다. 이에 근거를 묻는 추장의 질문에 기상청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인디언들이 예년보다 더 많은 땔감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이 우스게 이야기는 순환논증,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 등 논리적 모순을 설명할 때 단골로 사용되는 예시다. 안타깝게도 이 우스게 소리는 게임이용장애 관련된 논쟁과 구조가 너무 닮아있다.
인터넷 게임은 알코올, 마약류, 도박과 함께 묶어 보건복지부 산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관리한다. 그런데 자타가 공인하는 중독대상 '담배'가 여기에서 제외된 점은 좀 의아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이 있다. 알코올, 마약류, 도박은 법적으로 금지되거나 엄격히 규제되는 행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은 매년 수많은 사망자와 중상자를 발생시키는 심각한 범죄이며 마약류는 범죄, 사회적 혼란을 유발한다. 도박 역시 불법 도박장, 금전적 피해, 가족 해체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와 달리 게임은 2023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화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았다. 게임과 나머지 것들 사이에 도대체 어떤 심각한 공통점이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2025년 1월 발간된 '정신건강사업안내'에 의하면, 중독자재활시설에 '올코올 중독, 약물 중독 또는 게임중독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자'가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심지어 도박중독도 빠져있다.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와 게임 중독이 동급으로 이미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게임이용장애'가 공식질병으로 코드화가 되기도 전에 말이다.
보도에 의하면 복지부가 알코올, 마약, 도박과 함께 게임을 포함한 근거로 WHO ICD-11의 '게임이용장애'를 들고 있다. 권위있는 국제기구가 정한 질병분류에 의한 것이란다. 그럼 WHO가 어떤 근거로 정신장애로 지정했을까. 한국, 중국, 타이완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게임중독'에 대한 보고와 연구논문들이 주된 근거다. 이런 연구들조차 '게임중독'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며 게임중독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은 등 무시할 수 없는 결점이 서울대, 연세대 연구팀에 의해 확인되었다. 근거가 불확실한 우리나라 사례가 WHO의 결정 근거가 되고, 이 것이 돌고 돌아 다시 우리나라 정책의 근거가 된 것이다.
지난 주말 경기도 모 지역에서 중독예방캠패인에 인터넷게임 중독이 포함되어 게임계에서 논란이 크게 일었다. WHO의 결정을 근거로 한 복지부의 지침이 중독예방캠패인에 게임이 포함된 배경이란 해명이 있었을 뿐이다. 딱 한국판 인디언 일기예보다.
게임은 문화예술로 인정받아야 할 뿐 아니라 불법 및 범죄와 연계된 알코올, 마약류, 도박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을 동일한 범주로 묶는 것은 현실적 타당성이 부족하며, 정책적·사회적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WHO가 아닌 순전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인디언들의 땔감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치명적인 수준의 피해 말이다. 감정과 권위에 기반한 독단 대신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에 기반한 현명한 정책결정을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에 기대해 본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