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진흥원 최인호 부원장]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식구들 먹을 쌀마저 똑 떨어진 애순이네 집.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매일 눈에 띄지 않게 쌀독에 딱 하루치 쌀을 채워 준다. 해녀 이모들은 조용히 음식을 해 나르고 누군가는 월세를 마련해준다. 기댈 곳 하나 없던 그때, 이웃들의 작지만 세심한 손길은 애순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조용한 버팀목이었다.
서민금융진흥원의 ‘불법 사금융예방대출’도 그와 닮아있다. 작은 금액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마치 ‘하루치 쌀’과 같은 정책이다.
엔데믹 이후 고금리, 고물가 장기화로 서민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최근에는 금융회사 대출이 축소되면서 불황형 대출인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이 늘고 연체율도 급등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저신용·저소득 취약계층에게는 불법 사금융 외에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다. 무직자, 일용근로자, 연체자 등은 신용 평점이 낮아 은행은 물론 대부업 문턱조차 넘기 어렵다. 시장이 외면한 자리에는 여지없이 불법의 그늘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건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약 8000 건에서 지난해에는 약 1만 5000건으로 증가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금융 평균 금리는 무려 503%에 달했다고 한다. 내구제 대출, 금융기관 사칭 문자 등 그 수법도 점차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금융당국과 서금원은 2023년 3월 불법 사금융예방대출(소액생계비대출)을 출시해 운영 중이다. 신용 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라면 무직자와 연체자 등도 지원한다. 또한 단순 금융지원을 넘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대면상담을 통해 채무조정, 복지, 고용연계 등 복합상담도 제공한다. 취약계층의 불법 사금융 이용 피해를 예방하고 자활의 기회를 주는 종합지원 창구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는 것이다.
불법 사금융예방대출은 출시 이후 올해 2월말까지 약 25만 2000명에게 총 2079억원을 지원했다. 이들 중 92.4%는 신용 평점 하위 10% 이하의 최저신용자였고 대다수(81%)는 50만원의 소액을 빌렸다. 직업별로는 일용직, 무직,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이 69%를 차지했다. 50만 원의 소액조차 빌릴 곳이 없는, 불법 사금융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사람들이 비로소 최소한의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실제로 한 50대 이용자는 팔을 다쳐 직장을 잃은 상태에서 대학생인 자녀와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부양하고 있었다. 건강보험은 물론이고 전기료와 가스비 등 공과금을 낼 돈도 없었다. 오갈 데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았다. 센터직원은 이분에게 불법 사금융예방대출로 100만 원을 지원하고, 국민취업제도와 복지연계지원을 통해 기초생계급여, 통신사 요금감면 등 생계비를 추가로 지원했다.
올해는 불법 사금융 피해 예방이라는 제도의 실효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개선을 추진했다. 1000억원이었던 공급규모를 2000억원으로 두 배 확대하고 비 연체자의 기본 대출한도를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상향해 지원내용을 한층 강화했다. 연체에 따른 어려움을 막기 위해 최대 5년의 만기연장과 분할상환제도도 도입했다. 소액자금을 자주,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이용자 특성을 고려해 지난해 9월부터는 불법 사금융예방대출을 언제든 전액 상환하고 필요할 때 다시 받을 수 있는 재대출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불법 사금융은 제도권금융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과 가족, 미래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중대한 범죄다. 특히 신용 평점과 소득이 낮은 서민·취약계층에게는 더없이 치명적이다. 그러니 힘들수록 반드시 안전한 정책 서민금융의 문을 두드리길 바란다. 불법 사금융예방대출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하루치 쌀’ 같은 재기의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