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뻗어나가려는 K방산이 한국경제신문의 보도로 수출에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 B씨)
2024년 5월 30일 오후 2시께 한화그룹 법무팀 소속 변호사 A씨와 B씨는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을 찾았다. 전날 지면에 실린 기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보도 내용을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에게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A씨는 문제 제기할 단어와 숫자, 표현 등에 빨간 펜으로 표시한 뒤 기자들에게 들이밀었다. B씨는 이 보도가 한국 방위산업의 가치와 수출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항의했다.
한화그룹 법무팀이 편집국을 찾아와 문제 삼은 기사는 2024년 5월 29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대우조선 잠수함 기술, 산업은행 관리 중에 줄줄 샜다’였다. 대우조선해양 출신 기술자들이 잠수함 기술 도면을 빼내 대만으로 유출한 혐의로 비공개 재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2022년 11월 시작된 이 재판은 지난해 12월 유죄 판단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도 피고인들이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기술을 도용했다고 봤다.
이 시기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그룹은 2023년 5월 조선·해양 방산 계열사인 한화오션을 출범시켰다. 기사 내 수사와 재판은 한화오션 출범 전 벌어진 전직 기술자들의 일탈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화와 직접 관련된 사안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한화는 자신들과 무관한 기술 유출 보도에 이토록 민감했을까.
KDDX 수주전에 목숨 건 한화·HD현대
이유는 한국 해군의 차기 구축함 사업(KDDX·Korea Destroyer next Generation)에 있다. KDDX는 규모만 약 7조8000억원에 달한다. 2012년 무렵 시작한 이 사업은 현재까지 최종 사업자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두 곳뿐이며, 둘 중 한 곳만 승자가 된다.
함정 사업은 통상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건조 순서로 진행된다. KDDX도 개념설계는 2012년 대우조선해양이 맡았고,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가 가져갔다. 문제는 3단계인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이다. 상세설계를 맡은 업체가 1번함 건조까지 이어가는 구조라, 이 단계의 승자가 사실상 최종 낙찰자가 된다.
대우조선해양을 막 인수한 한화 입장에서는 KDDX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육·해·공·우주를 아우르는 방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그룹 전략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방산 사업을 총괄하는 김동관 부회장의 강한 의지도 작용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 HD현대 직원들은 과거 대우조선해양이 수행한 KDDX 개념설계 자료 등 군사기밀을 취득·공유한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한화는 이를 정조준했다. 당시 “군사기밀 유출 전력이 있는 부도덕한 기업이 국가 핵심 사업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폈고, ‘문제없는 한화, 부도덕한 HD현대’라는 이분법을 밀었다.
한화가 HD현대에 보안 관리 실패 프레임을 씌우며 압박하던 중,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에서도 보안 실패 사안이 재판을 통해 드러날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이는 HD현대가 한화오션을 역공하는 빌미가 됐다. 한화는 옛 대우조선해양의 부실한 보안 관리가 진행 중인 KDDX 수주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해외선 오월동주, 국내선 견원지간”
2024년은 한화와 HD현대가 대놓고 맞붙던 시기다. 양측은 그해 3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무대로 고소·고발전을 벌였다. 2024년 KDDX 사업자를 선정하려던 방위사업청도 이 때문에 결정을 예정보다 현재까지 미루고 있다.
양측은 그해 연말 K방산 원팀을 명분으로 고소·고발을 취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방산 수요가 급증하자 해외 수주를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두 회사가 갈등을 봉합하길 바라는 정부의 기류도 작용했다. 이후 호주 수주전에 함께 나섰고, 현재는 6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서도 한배를 탄 상태다.
하지만 국내선 KDDX 앞에서는 원팀 구호가 무색해진 상태다. 방사청은 지난해 12월 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를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로 정했다. ‘기본설계 수행자가 후속 사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행이 깨지면서 HD현대가 허를 찔린 셈이다. 한화오션은 결과적으로 기회를 얻게 됐고, 업계에선 HD현대가 사실상 한 차례 패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양측의 갈등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방사청이 HD현대의 기본설계 자료를 한화오션에도 제공하면서 갈등이 다시 폭발했다. HD현대는 영업비밀이 포함됐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지난 8일 이를 기각했다. 한화오션은 기본설계 자료를 토대로 제안서를 보강할 수 있게 됐다. 반면 HD현대는 자신들이 만든 설계 결과물이 경쟁사 손에 넘어갔다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오션과 HD현대는 해외에선 오월동주(吳越同舟), 국내에선 견원지간(犬猫之間)인 관계”라며 “해외 수주를 위해선 협력하는 척할 수밖에 없지만, 승자 독식 구조인 국내 방산 시장에서는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위산업 기획 보도로 제411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수년간 방산 하청업체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아래층부터 그 위까지 흐름을 추적해왔습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물론 HD현대·한화오션 등 정점에 있는 기업들조차 쉽게 닿지 못한 현장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냅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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