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4.5%에서 연 14.25%로 0.25%포인트 내렸다. 시장 예상치(0.5%포인트) 대비 낮은 인하 폭보다 관심을 끈 것은 옐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의 등장이었다. 지난달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에 동행한 뒤 모습을 감춘 그가 약 3주 만에 공개 석상에 나타나서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금리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감기에 걸려 한동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과의 불화설을 불식하지는 못했다. 악화하는 전시 경제 상황과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금리 인하 및 통화 정책을 주문하는 러시아 정부와 나비울리나 총재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부터 13년째 중앙은행 총재를 맡고 있는 나비울리나는 러시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다. 재임 기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을 기점으로 부과된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 맞서왔다. 2014년 당시 그는 루블화 자유변동환율제도 시행을 2개월가량 앞당겼다. 환율 방어를 위한 달러 소진을 막아 러시아를 지급불능 위기에서 구한 조치로 평가된다. 같은 해 12월에는 기준금리를 연 17%까지 올려 루블화 투매와 약세를 억제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러시아를 국가 부도 위기에서 수차례 구해내며 “서방의 경제 전쟁에 맞서는 러시아의 비밀 병기”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산업계 로비에도 나비울리나 총재를 거듭 지지해왔다. 하지만 4년 넘게 이어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나비울리나 총재를 향한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루블화 강세로 러시아 수출 기업은 이익이 잠식되고 고금리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푸틴 대통령도 이달 초 루블화 강세를 두고 “유감스러운 경제 문제”라고 표현했다. 나비울리나 총재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자들은 최근 나비울리나 총재 퇴진을 전제로 중앙은행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안을 논의했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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