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작가들도 자신이 왜 쓰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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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책 [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작가들도 자신이 왜 쓰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왜 쓰는가'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미국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는 2013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다. 그는 작년 출간된 책 '세부 속으로'에서 '왜 쓰는가'의 문제를 파고든다. 마치 미로 속에서 답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듯한, 그러면서도 이 미로의 출구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책이다. 왜 그런가?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글쓰기의 명확한 이유, 달리 말해 왜 쓰는가의 답을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존 바스의 한마디를 인용하면서 책을 연다. 바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가가 하는 말에는 그게 뭐든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니까요." 만약 우리가 한 명의 작가로서, 뭔가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하자. 아니,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뭔가를 쓰겠다는 작은 다짐 정도랄까. 우리는 과연 '어느 순간'에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책에 따르면, 저자도 그 순간을 정의 내리기 어렵다. 명성이나 돈 때문에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리디아 데이비스에게 외적인 조건은 글쓰기의 참조건이 아니다. 다만, 그가 주목하는 부분은 작가로서의 '즐거움'이다. 우선 최초의 충동이 작가의 내부에서 벌어진다. 그러면 작가는 그 충동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내려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형태를 조각하면서 '다른 어떤 형태, 더 나은 형태'를 가질 수 없을 형태로 충동을 외부화하려 한다. 충동의 대상인 소재가 변형돼 완벽게 들어맞는다고 느껴질 때까지의 형태랄까. 그렇게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이 즐거움이 끝이 아니다. 시간이 더 지나서, 다시 그걸 찾아 읽는 과정에서의 즐거움까지도 포함된다. 결국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작가에게 주어진 최고의 쾌가 된다. 작가가 즐거움을 확보하려는 시도 속에서, 작가는 주체가 아니다. 작가는 '도구'가 된다. 뭔가에 집중해 형태를 부여하려면 외부의 무언가가 소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창밖의 소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할 때, 우리가 소를 쓰는 게 아니라 소가 우리를 붙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쓸 수 있다. 이건 글쓰기의 원리다. 나를 열어두고 의지를 작동시키는 외부 사물이 나를 붙잡았을 때 글쓰기는 가능해진다. "글쓰기 과정,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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