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삿갓'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3 weeks ago 12

박창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우니 미팅을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겠다는 연락이었다. 평소 잘 확인하지 않던 일기예보를 살펴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서울은 이미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내가 가야 할 강원도는 그다음 날까지도 눈 소식이 이어졌다. 밤새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니 안전 운전하라는 일기예보가 그날따라 귀에 쏙 박혔다. 눈길 고속도로는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이 살짝 앞섰지만, 강원도만 가면 모든 지역 공연장에 다 가보는 상황인데다 어렵게 잡은 미팅이니 예정대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눈이 많이 와서 다음에 가겠습니다'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 없어 보이지 않은가.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며 느낀 유일한 악조건은 눈 오는 날이었다. / 사진. ©강선애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며 느낀 유일한 악조건은 눈 오는 날이었다. / 사진. ©강선애

이튿날, 계획대로 첫 번째 목적지인 강원도 원주로 향했다. 서행하는 차량의 속도에 맞춰 나도 평소보다 훨씬 느긋하게 운전했다. 드문드문 눈이 계속 내렸고, 도로는 축축하게 젖어 있어 운전대를 잡은 손에서 슬며시 땀이 차올랐다. 머리 뒤쪽이 뻐근하게 느껴질 정도의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릴 즈음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커브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차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속도를 많이 줄였음에도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았고, 핸들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핸들을 부여잡고 있을 때 가드레일 바로 앞에서 기적처럼 차가 멈춰 섰다.

아찔하고 서러운

만약 내 뒤로 따라오는 차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원주행 고속도로에서 몇 중 추돌'이라고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도 그 길 위에 있던 건 내 차 한 대뿐이어서, 그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련하게 약속을 지키겠다고 떠나온 길 위에서, 나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보다 다시 목적지로 향할 수 있음에 먼저 안도했다. 차가 커브 길에서 미끄러진 건 블랙 아이스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원주의 공연장도 주차장에서 공연장 입구까지의 길이 온통 살얼음판이었다. 미팅하겠다고 구두까지 챙겨 신은 바람에 입구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길이 운전해 온 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나마 난도가 낮아 보이는 쪽을 택해 겨우 문 앞에 섰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다시 얼어붙은 계단을 내려가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더 겁이 났다. 차라리 썰매를 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구두의 앞코를 바닥에 찍으며 엉거주춤 내려가던 순간, 나는 정말 썰매를 탄 사람처럼 그 길 위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순간 울컥하고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차올랐지만,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지체하느라 약속한 시각이 이미 지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갖은 일을 겪으면서도 미팅 생각뿐이던 나는 미팅을 약속한 사람과 결국 만나지 못했다. 비슷한 요청이 많아서인지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은 담당자가 휴가를 떠나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서러운 순간이었다.

내 머릿속의 지도

그해 나는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공연장을 찾아다녔다. 하우스콘서트를 지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히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알아주는 이 없으니, 담당자를 찾아가 함께 하우스콘서트를 하자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KTX가 닿는 큰 도시를 중심으로 하루에 한두 군데의 공연장과 미팅을 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이렇게는 많은 공연장을 다닐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차를 렌트해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4박 5일의 긴 여정을 떠났다. 지역을 하나 정하고, 그 주변 공연장들을 몰아서 찾다 보니 하루에 5~6개까지 미팅이 가능한 날도 있었다.

공연장이 있는 곳을 체크해 둔 지도. 사무실 벽면에 걸어두고 수시로 확인했다. / 사진. ©강선애

공연장이 있는 곳을 체크해 둔 지도. 사무실 벽면에 걸어두고 수시로 확인했다. / 사진. ©강선애

그렇다고 모든 만남이 의미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 멀리서 왔으니 이야기라도 들어보자는 선심을 느끼는 날도 있었고, 어떤 미팅은 10분도 채 안 되어 끝나버리기도 했다. 약속을 하고도 담당자를 만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30분, 1시간씩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만나면 미안해서라도 내 얘기를 좀 더 들어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경북 문경의 한 정자. 긴 출장 길에는 언제나 긴급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했다. / 사진. ©강선애

경북 문경의 한 정자. 긴 출장 길에는 언제나 긴급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했다. / 사진. ©강선애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머릿속에는 어느 지역에 어떤 공연장이 있는지, 각 공연장의 컨디션이 어떤지 지도처럼 입력이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떤 루트로 다니는 것이 편한지 알게 되었고, 때로는 풍경 좋은 지역에서 잠시 머무르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또 지역별로 공연장 담당자들이 모여 회의하는 날의 정보를 얻어 회의 장소 입구에서 제안서와 명함을 나눠 주는 요령도 터득했다. 그것은 직접 공연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여러 공연장 관계자에게 우리를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또 왔냐고 혀를 내두르던 사람들의 표정, 다른 지역 회의 일정을 슬며시 알려주던 사람들의 말 한마디까지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존심이 센 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하우스콘서트를 공연장에 유치시키고 싶었던 간절함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영업사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는 '강삿갓'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경북 울진문화예술회관 앞 바다에서 가진 휴식시간 / 사진. ©강선애

경북 울진문화예술회관 앞 바다에서 가진 휴식시간 / 사진. ©강선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두려움 없는 용감함과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배짱이 나조차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멀쩡한 직장을 떠나 새롭게 도전한 일인 만큼 성공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을 것이고, 하우스콘서트가 10주년을 기점으로 벌이는 가치 있는 일을 꼭 성공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역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연을 유치한 후 지역에서 만난 관객들이 눈을 반짝이며 공연을 관람하고, "정말 좋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겨줄 때마다, 지역을 찾아가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곤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공연을 '파는 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지역의 관객들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지역 하우스콘서트를 조금 더 발전시키기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 조사를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제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고도 무대 위 컨셉트를 살려 '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는 극장이 꽤 있다는 점이었다. 예전엔 무대 위로 관객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러한 시선이 많이 유연해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시작한 컨셉트를 빼앗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우리가 제시했던 공연장을 활성화 아이디어가 잘 활용되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소외된 지역을 찾아갈 이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날 다음 지역은 어떤 곳일까? 새롭게 만날 관객들을 기다리며 다시 길 위에 오른다.

“만약 당신이 관객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당신의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배우 캐서린 헵번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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