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 강조했지만...정치적 격랑에 휩싸인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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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강조했지만...정치적 격랑에 휩싸인 비엔날레

입력 : 2026.05.08 09:05

제61회 베네치아비엔날레 개막

국가관 99개 참여 ‘미술 올림픽’

심사위원 전원사퇴 초유의 사태

황금사자상 무산되며 권위 실추

러시아관 복귀에 격렬한 시위도

‘단조’ 주제 무색 거대담론 압도

아프리카 미술 장르 아닌 대세

한국인 유일 ‘요이’ 작품 눈길

관람객이 베네치아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인 헨리케 나우만의 작품 ‘The Home Front’를 감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관람객이 베네치아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인 헨리케 나우만의 작품 ‘The Home Front’를 감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오전 11시 제61회 베네치아비엔날레 언론 프리뷰가 시작되자마자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 위치한 러시아관은 한바탕 격렬한 소동에 휩싸였다. 러시아관 앞에 핑크색 복면을 쓴 활동가 수십명이 연막탄을 쏘아 올리며 “노 러시아(No Russia)”라는 구호를 연신 외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4년 만에 복귀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였다.

인근 아르세날레에 마련된 이스라엘 임시 국가관도 마찬가지였다. 200여명의 시위대가 몰려가 “집단학살 국가관 반대”를 외치며, 이 과정에서 전시관이 일시 폐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비엔날레 행사장 곳곳에서 반러시아·반이스라엘을 외치는 시위가 이어지자, 이탈리아 현지 경찰이 대거 배치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는 지난해 작고한 아프리카 출신 첫 여성 총감독 코요 쿠오의 주제 ‘단조로(In Minor Keys)’를 고수하며, 화려한 볼거리나 거대 담론 대신 ‘낮은 주파수’ ‘성찰’ ‘내밀한 감각’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의 비엔날레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전쟁의 파고를 온몸에 맞으며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개막 직전 심사위원단 5명이 전원 사퇴하며 황금사자상 시상이 무산된 사태는 거대 담론을 걷어내고 내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했던 예술적 지향점이 오히려 정치적 담론에 가로막혀버린 역설적인 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 비엔날레 측은 관람객 투표 방식으로 1등을 꼽는 ‘관객상’을 신설해 폐막일에 시상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베일을 벗은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는 다양성과 깊이를 추구하며 정치적 소음을 넘어선 예술 본연의 울림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모두 111명(팀)이다. 예년에 비해 절반이 줄어든 수치다. 대신 작가 한 명의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조망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냐 출신으로 아프리카 역사와 기억, 정체성을 탐구하는 칼로키 냐마이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대형 회화를 선보인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뿐만 아니라 신문지, 사진, 밧줄, 고무 등 다양한 매체를 층층이 쌓아 올려 복합적이고 파편화된 개인의 기억을 기록한다. 특히 풍부한 물성을 활용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은 기존 흑인 미술의 전형성을 탈피한 혁신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카메룬 출신의 베레베레 리킹 역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여성의 내면적 힘과 생명력에 집중해 온 그는 인간과 동물이 뒤섞인 신화적 형상의 회화와 조각을 통해 인간의 깊은 무의식을 탐구한다. 미국 흑인 여성 작가인 케네디 양코 역시 금속과 페인트스킨을 결합한 대형 조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올해 비엔날레는 이처럼 아프리카 현대 미술이 전시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며 미술계의 주류로서 대세 굳히기에 나선 모습이다. 기존의 흑인 미술이 주로 고통이나 투쟁의 역사라는 무거운 서사에 집중했다면, 일상과 가족애 같은 보편적 가치로 주제를 확장하고 다양한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결합한 추상 작업을 통해 예술적 외연을 넓혔다는 관측이다.

소수자의 목소리도 작지만 강했다. 일본 작가인 부부 드 라 마들렌은 소수자의 신체와 그 속에 새겨진 내밀한 삶의 궤적을 탐구하며 관객에게 나직한 고백을 건넨다. 일본관 전시 역시 성소수자 부부의 육아전쟁을 200개 아이 인형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전하고 있다. 더욱이 관람객이 직접 5kg짜리 아기 인형을 안고 고된 육아를 체험할 수 있어 공감을 받고 있다.

한국 작가로는 본전시에 유일하게 초청받은 요이(Yoi)는 제주 해녀의 집에서 생활하며 기록한 강렬한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해변가 흰옷을 입은 아이들이 터질 듯한 숨을 한계까지 참아내다 마침내 뱉어내는 영상은 관객의 호흡마저 멎게 만드는 묘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은 영국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과 비엔날레의 공동 기획 작가로 선정돼 넓은 공간에서 깊이 있는 작업 세계를 선보인다. 이번엔 유물의 훼손과 보존 처리 과정을 추적하며 박물관 시스템이 규정하는 가치에 의문을 던지고, 유물에 새로운 맥락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99개 국가관도 다채롭다. 프랑스관은 이토 바라다의 ‘토성처럼’ 개인전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부터 ‘멜랑콜리, 은둔, 느린 사고’의 상징이었던 토성의 이미지를 소환하며 시간의 흐름과 파괴를 고찰한다. 캐나다관은 압바스 아카반의 ‘개와 늑대의 시간’을 주제로 낮과 밤이 교차하며 사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황혼의 순간을 대규모 수조를 활용한 설치 미술로 풀어낸다.

미국관과 독일관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독학 조각가 알마 알렌은 개인전 ‘나를 산들바람이라 불러주오’를 통해 나무, 돌 등 자연 소재를 활용한 유기적 조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올해 초 작고한 독일 여성 작가 헨리케 나우만은 소파와 의자, 커피 테이블 등을 통해 동독 체제 붕괴 이후 정체성의 혼란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비엔날레 전시는 9일 일반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장장 7개월간 열린다.

베네치아 이향휘 선임기자

제61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케냐 작가 칼로키 냐마이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대형 회화를 통해 복합적이고 파편화된 개인의 기억을 기록한다.  <이향휘 기자>

제61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케냐 작가 칼로키 냐마이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대형 회화를 통해 복합적이고 파편화된 개인의 기억을 기록한다. <이향휘 기자>

한 관람객이 2026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국관에서 알마 알렌의 유기적인 조각을 관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관람객이 2026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국관에서 알마 알렌의 유기적인 조각을 관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이스라엘 시위대 200여명이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에 위치한 이스라엘관 앞에서 전시를...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반이스라엘 시위대 200여명이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에 위치한 이스라엘관 앞에서 전시를...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흑인 여성 작가인 케네디 양코는 버려진 금속을 수집해 절단하고 구부려 뼈대를 만든 뒤 페인트 스킨을 덮거나 꼬아서 무엇이 금속이고 무엇인 페인트인지 질문한다. <이향휘 기자>

미국 흑인 여성 작가인 케네디 양코는 버려진 금속을 수집해 절단하고 구부려 뼈대를 만든 뒤 페인트 스킨을 덮거나 꼬아서 무엇이 금속이고 무엇인 페인트인지 질문한다. <이향휘 기자>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유일하게 초청된 한국 작가 요이의 영상작업. 숨을 최대한 참았다가 뱉어내는 순간을 소리와 영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향휘 기자>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유일하게 초청된 한국 작가 요이의 영상작업. 숨을 최대한 참았다가 뱉어내는 순간을 소리와 영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향휘 기자>

아기 인형을 대거 선보인  일본관 전시 전경. <AFP연합뉴스>

아기 인형을 대거 선보인 일본관 전시 전경.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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