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문화평론가]지난 8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됐다는 신호다. 곧 성당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지난 4월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함으로써 15일 만에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추기경들의 비밀회의)를 통해 레오 14세가 새 교황에 선출됐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남미 페루에서 22년간 사목했고 페루 시민권까지 취득했다. 또 스페인계 어머니와 프랑스계 아버지를 둔 다문화적 배경에서 자라났으며 환경, 빈곤, 이주민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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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교황 선출에 국적이나 성향 심지어 피부색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건 평범한 대중의 세속적인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번 콘클라베를 앞두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미국인이 교황이 되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교황의 권위를 세속적인 욕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온 지극히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콘클라베에 한국인 성직자로 유일하게 유흥식 추기경이 참여했다는 사실에 은근한 기대의 목소리가 나왔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제리 대주교인 장폴 베스코 추기경이 프랑스 매체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얘기했듯이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국가적 정체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어느 국적이나 성향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류를 위한 종교적 지도자가 바로 교황이라는 위치다. 그래서 콘클라베가 끝나고 베스코 추기경이나 유흥식 추기경은 인터뷰를 통해 모두 그 선거의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또 뽑힌 새 교황이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라고 상찬했다.
이번 콘클라베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게 된 데는 최근 방영된 영화 ‘콘클라베’의 영향이 적지 않다. 교황의 갑작스러운 선종으로 열리게 된 콘클라베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파격적이게도 교황을 뽑는 투표에서조차 세속적인 파벌정치의 양상이 벌어지는 것을 그렸다. 투표를 위해 전 세계에서 추기경단이 모였지만 식사 자리에서부터 영어권, 스페인권, 이탈리아권, 아프리카권 등 언어·지역·성향별로 나뉘어 식사를 한다. 그 속에서 네 명의 유력후보가 파벌을 형성하는데 진보 성향이 벨리니(스탠리 투치 분), 전통적인 교리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보수파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 분), 아프리카 출신으로 제 3세계의 지지를 받는 아데예미(루시안 음사마티 분), 중도 성향의 트랑블레(존 리스고 분)가 그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선거판 변수로 교황이 생전에 비밀리에 임명한 아프가니스탄 추기경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즈)가 등장한다. 영화는 이 혼탁한(?) 선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선거를 이끌어 나가는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즈)이 겪는 심적 고통을 따라가면서 이 밀실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벌화한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교황 선거라는 엄숙한 소재를 가져왔지만 영화는 파벌로 나뉘어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확신에 빠진 이들이 보지 못하는 바깥 세상의 참상을 그려낸다.
물론 이 영화 속 콘클라베의 풍경은 실제가 아니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했던 유흥식 추기경은 “외부에서는 교황 선출 과정이 대단한 투쟁처럼 묘사되고 정치적 야합이 이뤄지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친교적이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영화 ‘콘클라베’를 보지 못했는데 다른 추기경들이 엉터리라고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실제처럼 그려졌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허구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클라베’는 영화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허구가 더해진 상상력으로 그려낸 것이지만 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콘클라베 자체라기보다는 국가와 언어, 성향 등으로 나뉘어 자기 세계의 밀실 안에서만 생각하고 그걸 확신해 밀실 바깥의 타자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콘클라베도 그 세속적인 욕망과 사심이 만들어 내는 혼탁한 선거가 추기경들의 반성을 통해 자정돼가는 과정을 담는다. 나와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이유로 분열과 파괴로 이어지는 세상에 지지 않고 포용하며 나아가는 것이 자신들의 해야 할 일이라는 베니테스 추기경의 말 앞에 정쟁을 벌였던 추기경들은 고개를 숙인다.
레오 14세를 새 교황으로 뽑은 실제 콘클라베의 풍경과 정쟁 속에서 길을 잃었지만 스스로 반성하며 다시 길을 찾아내는 영화 속 콘클라베의 풍경은 현실과 허구로 다르지만 그 두 풍경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를 치르고 뽑힌 이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궁극적인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이가 뽑혔다고 불만을 드러내지도 않고 나아가 승자니 패자니 하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베스코 추기경은 콘클라베는 “정치가 아니다”라며 “정치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표가 나뉘는 선거를 치렀지만 그가 뽑힌 후에는 “모두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콘클라베는 정치가 아니라지만 적어도 사익이 아닌 공적인 목표를 잊지 않는 콘클라베의 정신은 우리네 정치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네 정치판은 갈수록 정당과 파벌로 나뉘어 끊임없이 물고 뜯는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파벌로만 채워진 밀실 안에서 그것만이 옳다는 확신을 갖고 바깥을 적이자 악으로 단정 짓고 깎아내리는 정치는 선거에 이르러 그 정점을 찍곤 했다. 그리고 선거 후에도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고 정쟁을 이어 가는 과정 속에서 정작 공적인 목표여야 할 국민의 삶은 저 뒤편으로 밀려나곤 하지 않았던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전원일치 ‘파면’ 선고를 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벌써 정당들의 상대 진영 깎아내리기가 시작됐고 심지어 정당 내부에서도 후보 선출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모쪼록 조기 대선 이후에는 공적 목표로 돌아오는 정치가 되살아나길 바란다. 사적 이익으로 벌어지는 정쟁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