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근로는 다르다...63년만에 바뀐 노동절, 그 언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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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근로는 다르다...63년만에 바뀐 노동절, 그 언어의 무게

입력 : 2026.04.30 15:38

노동에는 낙인, 근로에는 훈장
63년 만에 되묻는 언어의 정치
‘일하는 사람’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노동절(5월 1일)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동상 인근 건물에 노동절 축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6.4.30 <연합뉴스>

노동절(5월 1일)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동상 인근 건물에 노동절 축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6.4.30 <연합뉴스>

매년 5월 1일은 국제 노동절이다. 전 세계 130여 개국이 이 날을 기념하지만,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은 오랫동안 ‘근로자의 날’이었다. 단순한 명칭 문제처럼 보이지만, ‘노동(勞動)’과 ‘근로(勤勞)’ 사이에는 법적·제도적으로 수백만명을 갈라놓는 깊은 골이 있다.

이름이 지워온 것들

사실 한국에서도 출발은 노동절이었다. 1923년 5월 1일 조선에서 노동단체들이 주도해 약 2000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최초의 노동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5월 1일 노동절 기념이 이어졌다.

그러나 1961년 군사정권이 출범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정부는 노동운동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변경하고, 기념일도 5월 1일에서 3월 10일로 옮겼다. 노동에 투쟁과 불온의 낙인을 찍고, 생산과 협조의 언어인 근로로 담론을 갈아엎은 정치적 선택이었다.

이후 1994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기념일은 다시 5월 1일로 돌아가긴 했지만, 명칭 ‘근로자의 날’은 그대로 유지됐다. 날짜는 국제 기준으로 되돌렸지만, 이름 만큼은 여전히 과거의 아픈 흔적을 안고 있는 셈이다.

두 단어, 전혀 다른 세계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단순한 뉘앙스의 문제가 아니다. 법적 정의와 적용 범위에서 분명한 차이를 가진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근로는 누군가 밑에서 일하는 것이고, 노동은 일하는 방식에 관계없이 일 그 자체를 뜻한다.

노동은 인간이 생계와 생산을 위해 수행하는 모든 형태의 일을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고용계약 여부나 종속성에 관계없이 자영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종사자, 특수고용직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반면 근로는 사용자와의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 법적 지위를 의미한다. 현행법상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근로자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용자와의 종속적 관계가 전제된다.

문제는 이 구분이 실제 권리 보장의 경계를 결정짓는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는다. 이에 따라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핵심적인 노동 보호 체계 밖에 놓이게 된다.

왜 지금 다시 노동인가

인공지능(AI) 등 등장으로 산업구조가 급변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명칭 변경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보호 대상을 어디까지 넓힐 것인가라는 제도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노동절을 ‘노동절’이라 부르는 것은 그 이름 안에 모든 일하는 사람을 담겠다는 선언이다. 반면 ‘근로자의 날’은 특정 고용 형태에 속한 이들만의 기념일로 좁혀진다.

언어는 제도를 앞서거나 뒤따른다. 63년 만의 이름 논쟁은 결국 우리 사회가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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