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 새롭다"…K아트에 열광하는 인도네시아 슈퍼리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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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백아트에서 열린 최상철 작가의 개인전에서 현지 컬렉터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백아트 제공

지난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백아트에서 열린 최상철 작가의 개인전에서 현지 컬렉터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백아트 제공

지난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백아트 갤러리는 현지 자산가들로 가득 들어찼다. 한국 원로 작가 최상철 화백(79)의 개인전 개막식을 맞아 작가를 직접 만나보려는 미술품 컬렉터들이었다. 이들은 작가에게 “어떤 작품을 할 때 가장 고통스러웠느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몰려들면서 최 화백은 수십 번씩 작품 앞에 서서 미소를 지어야 했다. 최 작가는 “얼굴이 닳은 것 같다”면서도 “한국의 개막식 행사는 보통 조용한 분위기인데, 이곳 컬렉터들은 에너지가 넘쳐서 좋다”며 웃었다.

급성장하는 인도네시아 미술 시장에서 한국 작가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지 컬렉터층의 급격한 성장과 한국 갤러리의 끊임없는 ‘노크’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 작가 작품을 사들이는 ‘슈퍼 리치’도 늘고 있다. 이날 전시장에서도 개막식이 끝나기 전 작품 일부가 판매됐다.

최상철 작가가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백아트 제공

최상철 작가가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백아트 제공

“韓 미술, 놀랍고 새롭다”

처음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최 화백 작품이 인기였던 건 아니다. 그의 작품은 철학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오랫동안 추계예술대 교수로 재직한 최 화백은 한국 화단의 주류 사조와 거리를 두고 오랜 시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개척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주를 이루는 건 ‘무물(無物)’ 연작. 작가의 헛된 욕망이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회화’를 추구하기 위해 물감을 묻힌 조약돌을 굴려 완성한 작품들이다. 열대의 색을 담은 컬러풀한 작품, 자국 역사나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호하는 인도네시아 컬렉터가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2023년 백아트가 인도네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 자카르타’에 그의 흑백 위주 작품을 들고 나갔을 때만 해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던 이유다. 하지만 지난 2년 새 상황이 바뀌었다. 수잔 백 백아트 대표는 “인도네시아 컬렉터는 진지하게 작가를 탐구하고, 자신의 취향과 가치에 맞으면 주저 없이 작품을 산다”며 “최근 현지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 화백 등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컬렉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최상철 작가와 현지 컬렉터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백아트 제공

최상철 작가와 현지 컬렉터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백아트 제공

지난해 9월 아트바젤이 자체 기사를 통해 조명한 자카르타의 컬렉터 에블린 할림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대사관저로 사용하던 수백억원대 건물을 매입해 개인 미술관처럼 쓰는 ‘슈퍼 컬렉터’다. 직접 둘러본 수장고에는 백남준과 성능경 등의 작품이 있었다.

떠오르는 인도네시아 시장

남아시아는 미술계가 주목하는 신흥 시장이다. 인구가 7억 명에 육박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 미술시장 성장 잠재력이 크다. 세계적인 갤러리와 경매사가 싱가포르를 교두보로 삼아 동남아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이유다.

미술계가 인도네시아를 특히 주목하는 건 슈퍼 컬렉터들의 존재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000달러 안팎에 불과하지만 부호의 씀씀이만큼은 한국을 뛰어넘는다. 위유 와호노, 아비가일 하킴 등 시내에 개인용 수장고 겸 전시장을 만들어 놓은 유명 컬렉터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할림과 함께 발리섬 북부 해저에 산호초 보호를 위한 설치 작품 ‘도무스 앙귈라에’(2022)를 전시하는 등 파격적 행보로 국제 미술계의 화제를 모았다. 아트바젤 관계자 등 서구 미술인이 이들의 컬렉션을 보기 위해 인도네시아행 비행기를 탔을 정도다.

자카르타의 '슈퍼 컬렉터' 에블린 하킴이 성능경 작가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전시실을 소개하고 있다.

자카르타의 '슈퍼 컬렉터' 에블린 하킴이 성능경 작가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전시실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 갤러리들도 자카르타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아트 자카르타 행사에는 한국 갤러리 6곳이 참여했다. 인도네시아 미술에 관심을 보이는 한국 컬렉터도 늘고 있다. 국내 한 컬렉터는 “인도네시아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수백만원대인데, 현지 미술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향후 가격이 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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