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크 재킷에 벨벳 부츠, 오버사이즈 캐시미어 코트 혹은 양털 점퍼. 럭셔리 브랜드가 과거에 주로 내놓던 아프레 스키 컬렉션 룩이다. 보기엔 멋지지만 입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아무리 스키를 타고 난 뒤에 입는 옷이라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눈밭에서 활동하기엔 한없이 불편한 디자인이다. 게다가 비싸고 섬세한 옷감을 생각하면, 금세 더러워지고 상할까 걱정이 앞서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레 스키 패션의 매력은 이런 비합리적인 면에서 빛을 발한다.
아프레 스키 패션이 말하는 ‘진짜 여유’
럭셔리 브랜드들은 20세기 중반 백작·공작 등 귀족이나 그 부인들이 온몸에 밍크, 염소 털 등의 모피 코트를 두르고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아프레 스키 의상을 만들었다. 낮에 스키를 타고 썰매를 즐기다가 해가 질 무렵 스키 부츠만 벗어도 사람들과 사교를 즐길 수 있는 그런 복장이다. 물에 닿으면 털이 뭉치고 가죽이 망가지는 모피 코트를 입고 하루 종일 눈밭에서 돌아다닌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시대의 셀럽들에겐 허용된 일탈이었다. 패션 아이콘 제인 버킨은 종종 모피 코트와 퍼 부츠 차림으로 스키장 리조트를 방문하곤 했다.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바닥까지 내려오는 양털 재킷을 질질 끌고 한겨울 프랑스 메리벨에서 휴가를 보냈다. 양털 코트는 때가 타도 세탁할 수도 없다. 어쩌면 삶의 여유란 이처럼 비효율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상태를 일컫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라. 아름답고 멋진 스타일이라면 옷이 조금 상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수 있는 ‘쿨함’을. 요즘 세대 말을 슬쩍 빌리자면 그야말로 ‘힙’한 패션이다. 명품 브랜드가 매 시즌 컬렉션을 내놓을 정도로 아프레 스키 패션을 사랑하는 이유다.
패션하우스들이 유럽 상류층 스키 휴양 문화를 본격 상품화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최초의 동계올림픽 이후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스키가 대중적 인기를 얻자 명품 브랜드들은 스키장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당시 에르메스와 샤넬, 파투 등 파리 하이패션 브랜드가 몸을 감싸는 더블브레스트 재킷에 허리 부분이 덮이는 하이웨이스트 팬츠 슈트를 선보였는데, 슬로프에서도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게끔 하는 게 디자인 포인트였다. 크리스찬디올의 패션 스승으로 알려진 프랑스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디자이너 뤼시앵 를롱은 투피스 슈트에 모자와 장갑, 스카프까지 완벽하게 세트로 매치한 스타일을 제안했다. 현재 스키 복장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아프레 스키 패션은 멋·실용성 다 잡아
지금의 아프레 스키 패션은 ‘멋’을 추구하면서 어느 정도 실용성도 갖췄다. 특수 소재와 가공 기술이 만난 덕이다.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는 이번 겨울 ‘코코 네쥬 컬렉션’에서 기능성을 갖춘 소재로 아프레 스키룩을 제작했다. 우아하고 편안한 것은 물론 스키 슬로프를 포함해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눈에 잘 젖지 않도록 특수 개발한 소재로 제작한 핑크 컬러의 새틴 다운 재킷이 대표적이다.
구찌는 스키웨어 ‘알티튜드’에 스포츠 의복의 기술을 더했다. 통기성이 뛰어난 레이어 구조에 발수 기능까지 넣었다. 루이비통도 마찬가지다. 미러 고글과 다운 점퍼로 완성한 스키룩부터 반짝이는 메탈릭 액세서리와 매치한 울, 캐시미어 니트 등 리조트룩까지 여유로운 무드를 가득 담은 데다 눈밭에서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도록 기능적인 면도 놓치지 않았다. 발렌시아가 스키웨어 컬렉션은 아예 실용성을 핵심 모토로 삼았다. 보온성과 내구성을 극대화한 아우터. 리버서블 푸퍼, 방수 셸 파카, 플리스 집업 등 기술력을 겸비한 아우터웨어가 주를 이룬다.
스키를 탄 후에 입는 옷이라도 스포츠웨어로서의 정체성에 더 초점을 두고 싶다면 선택지는 있다. 스포츠 브랜드와 럭셔리 업체가 협업해 함께 선보인 컬렉션에 주목해보자. 나이키와 자크뮈스가 제작한 아프레 스키 의류 컬렉션은 스키어와 스노보더는 물론 산악인까지 만족시킬 정도로 방수·방풍 등 보호력을 갖췄다. 노스페이스가 킴 카다시안 브랜드 스킴스와 손잡고 내놓은 컬렉션은 좀 더 ‘인스타그래머블’하다. 스킴스 특유의 타이트한 실루엣은 설원 위 런웨이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하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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