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ETF 열풍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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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ETF 열풍의 그림자

‘테마형 ETF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유행하는 테마에 편승해 출시되는 상장지수펀드(ETF)는 흔히 시장 대비 저조한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이 2021년 발표한 ‘ETF 세상에서 관심 끌기 경쟁(Competition for Attention in the ETF Space)’이란 논문을 통해서다.

연구팀은 1993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에서 거래된 ETF를 조사해 흥미로운 경향을 찾아냈다. 첫째, 고점 부근 상장. 테마형 ETF가 상장되는 시점에 그 안에 담긴 종목은 직전 1년간 시장 대비 평균 30% 이상 오른 상태였다. 시장에서 유행하는 테마가 ETF로 집중 출시될 때면 이미 장밋빛 전망이 주가에 상당히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상장 후 저조한 수익률. 테마형 ETF는 상장 후 5년간 수익률이 시장 대비 연평균 4%포인트가량 낮았다. 지난해 모닝스타 조사에선 직전 5년간 테마형 ETF의 20% 정도만 시장을 이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셋째, 비싼 수수료. 테마형 ETF의 평균 수수료율은 운용자산의 0.61%로 시장 추종형 ETF(0.19%)보다 세 배가량 높았다. 투자자는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더 나쁜 성과’를 사는 셈이다.

넷째, 낮은 분산 효과. 테마형 ETF는 시장 전반을 추종하는 ETF에 비해 몇몇 종목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그만큼 변동성이 크고 이는 하락장에서 독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테마형 ETF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운용사는 고객의 수익이 아니라 잘 팔리는 상품을 내놓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운용사로선 대중의 관심을 끄는 테마를 포장해 내놓는 게 판매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수수료가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아진 시장 추종형 ETF에 비해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점도 운용사가 테마형 ETF에 매달리는 이유다. 상승장에서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개인의 ‘포모’(FOMO) 심리와 한 방을 노리는 탐욕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 외국 논문 얘기를 꺼낸 건 한국의 ETF 열풍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ETF 전성시대다. ETF 순자산이 450조원을 넘었다. 작년 말보다 16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ETF가 쏟아진다. 대부분 테마형 ETF다. 2차전지, 바이오, 조선, 방위산업, 반도체, 인공지능(AI), 소형모듈원자로(SMR), 우주, 광통신 등 유행하는 테마가 나타날 때마다 우후죽순식으로 관련 ETF가 쏟아진다. 서로 베낀 듯 비슷비슷한 ETF도 많다.

스페이스X 상장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미국 우주 기업에 투자하는 ETF가 지난 3, 4월에만 4개나 나온 게 단적인 예다. 여기에 몰린 자금이 1조원을 훌쩍 넘었다. 이들 ETF의 수익률은 출시 후 지난주까지 모두 시장 평균에 못 미쳤다. S&P500지수 대비 수익률이 10%포인트 넘게 뒤진 곳도 있다. 이들 ETF에 담긴 종목은 대부분 지난 1년간 3~4배 이상 올랐다. 10배 안팎 오른 종목도 있다. 적자 기업이 대부분이고 흑자 기업도 주가수익비율(PER)이 수백 배를 넘는 사례가 많다. 이들 ETF의 수수료는 S&P500지수를 좇는 ETF보다 7~16배 비쌌다.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의 지적대로다.

정부의 코스닥시장 활성화 정책에 편승해 나온 코스닥 액티브 ETF도 마찬가지다. 일부 운용사는 관련 ETF를 내놓으면서 PER이 2000배를 넘어 애널리스트마저 분석을 포기한 종목을 대거 편입하기도 했다. ‘상투를 판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반도체 활황을 타고 급등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개별 종목 레버리지 ETF도 곧 나온다.

물론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증시 격언처럼 테마형 ETF가 시장 대비 높은 수익을 낼 순 있다. 하지만 하락장에서 이런 ETF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개별 종목 분석이 힘든 개인에게 ETF는 편리한 투자 수단이다. 단 광범위한 분산 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어 개별 종목을 덜 봐도 되는 시장 추종형 ETF와 테마형 ETF는 엄연히 다르다. 테마형 ETF는 화려한 포장지만 봐선 안 된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달갑지 않은 저주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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