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서 개편안 마련
부실한 조사·무리한 제재로
공정위 판정 줄줄이 패소
사건 분석기능 강화 취지
새 정부가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전면적인 조직 개편에 착수한다. 2년 전 분리됐던 조사·정책 기능을 재통합하면서 경제분석국을 신설해 전반적인 업무 지원 체계를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지시한 인력 확충과 함께 경제부처로서 위상을 격상시키는 방안도 검토된다.
9일 정부에 따르면 출범을 앞둔 국정기획위원회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정위 조직 개편안이 내부적으로 마련됐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의 경우 경제분석 책임자가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할 정도로 위상이 높다”며 “조사 기능을 보강하려면 이를 지원해줄 경제분석 역량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증가하는 플랫폼 기업 관련 사건처럼 복잡한 사안에 요구되는 경제분석 기능을 강화해 조사와 정책 전반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기반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개편안에는 공정위 담당 사건의 재판관 역할을 하는 상임위원을 현행 3명에서 4명으로 늘리고, 전체 인력을 늘리는 방안이 포함됐다. 현재 국무총리 직속 기관인 공정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출범 후 공정위와 관련 논의를 거쳐 해당 개편안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조사·정책 조직이 둘로 나뉜 뒤 조사 역량 약화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23년 공정위는 기능별 전문성과 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조사와 정책 부서를 33년 만에 분리시키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나 공정위 내에서 조사·정책 부서 간 협업 약화와 비효율적 인력 배치 문제가 불거졌다. 과거에는 정책 담당자가 조사에도 참여했는데 기능 분리 이후 만성적인 인력난이 심화한 것이다.
공정위 사건 처리도 지연됐다. 사건 처리 기간이 초과된 비율은 2018년 16.5%였으나, 2023년 29.6%, 지난해에는 8월 기준으로 36%까지 늘었다. 연간 3000건을 넘던 사건 처리 실적은 조직 개편 이후 2000건대로 줄었다.
공정위 제재 역시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가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혐의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271억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3월에는 호반건설이 공공택지 전매 등으로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부과받았던 과징금 608억원 중 365억원을 취소하라는 판단을 받았다. 지난해 대법원에서는 SPC가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받았던 647억원의 과징금 제재가 최종 취소됐다.
공정위는 이 대통령이 지난 5일 첫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인력 충원에 대해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급하게 증원해야 할 분야가 어디인지, 어느 정도 규모로 인력을 증원해야 할지를 내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며 “관계 기관들과 협의를 거쳐 충원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조사 인력 확충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인력 정원은 650명으로 27개 중앙행정기관 중 19위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이례적으로 특정 부처에 대한 보강을 언급하면서 후보 때부터 강조한 공정경제 기조를 실현할 핵심 부처로 공정위를 활용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과거 2000년대 공정위의 조사 기능이 강화됐던 조사국 전성기 시절 무리한 조사로 법원에서 제재가 번번이 뒤집히는 부작용이 있었던 만큼 기능 강화에 따른 균형 잡힌 운용이 관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