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값 등 나날이 치솟는데
저가 공사비에 원가 절감 압박
결국 안전관리자·신호수 등 포기
정부 대기업현장 집중 때리지만
전체 건설현장 사망사고 40%가
안전관리 의무 없는 소기업 현장
지난해 11월 인천 검단신도시의 한 공공분양 아파트 재시공 현장에서 50대 굴착기 기사가 숨졌다. 앞서 철근 누락으로 지하 주차장이 붕괴돼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던 이곳에서 소형 굴착기가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무게중심을 잃고 전복됐다. 사고 후에야 건설용 리프트가 설치됐다. 1000억원이 넘는 대형 공사였지만 낙찰률은 70%대 초반(70~74%)에 불과했다.
그보다 한 달 앞선 지난해 10월 부산 만덕~센텀 지하 고속화도로 2공구 공사 현장에서도 60대 작업자가 사망했다. 이 토목공사의 낙찰률은 60%대(65~69%)였다. 양쪽 사고 현장의 공통점은 모두 적정 공사비에 비해 공사비가 한참 모자란 저가 공사란 점이다.
매일경제가 국토안전관리원의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에 등록된 지난해 사망사고 현장 239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사망사고가 난 공공건설 현장 중 약 80%는 낙찰률 90% 미만의 ‘저가 공사’였다. 민간공사에서 같은 조건의 비율이 20%대에 불과한 것과 대비된다.
낙찰률이 낮으면 공사비 절감 압박이 곧장 안전으로 전가된다. 발주처가 정한 적정 공사비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계약한 시공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법적 최소 인원 외에 안전관리자·신호수 등을 추가 배치하는 것을 포기하고 검증된 고품질 안전시설물 대신 값싼 구형 장비를 사용한다.
숙련공 대신 저임금 비숙련공을 투입하고 하도급이 반복되며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예산은 더 줄어든다. 결국 마지막 단계의 작업자는 쪼그라든 예산 속에서 무리한 작업을 강요받는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안전관리망’조차 이 구조적 위험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 포스코이앤씨의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 현장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고, 정치권도 안전관리계획 미이행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영업정지·과징금·면허취소까지 가능하게 하는 특별법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사망사고 중 38.5%는 정부의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현장에서 발생했다.
안전관리계획은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교량, 21층 이상 건축물, 지하 10m 이상 굴착 공사 등 고위험 현장에만 의무 적용된다. 착공 전 위험 요소 분석과 공정별 안전 대책, 비상 대응 계획 등을 담아 발주청이나 인허가기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소규모 현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실제로 지난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비대상 현장’ 92곳 중 89곳(96.7%)은 ‘19인 미만’ 소규모 공사였고 공사비 100억원 미만인 곳이 97.8%였다. 이들 현장은 대부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전문 안전관리자를 두거나 체계적인 안전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건설업계의 가장 취약한 고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주목도 높은 대기업 현장에 대해서만 고강도 점검과 처벌을 단행하는 ‘보여주기식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작 사망사고의 온상이 되는 영세 현장에 대해서는 맞춤형 안전관리 지원책이나 제도적 보완이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는 오래전부터 “원가에도 못 미치는 공사비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낙찰률 현실화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저가 발주 구조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사고 발생 시 ‘부실 시공’과 ‘안전 불감증’이라는 프레임으로 기업에만 책임을 묻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저가 발주와 관리 사각지대가 맞물리면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현장의 죽음은 줄지 않는다”며 “처벌 이전에 발주 구조 개혁과 영세 현장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작년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 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공공공사 낙찰률을 1.3~3.3%포인트 상향해 순공사비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낙찰률 소폭 인상만으로는 근본 해결이 어렵다”는 냉담한 반응이 나온다. 저가 발주와 관리 사각지대라는 이중 구조를 해소하지 않는 한 건설 현장의 ‘안전’ 구호는 공허하게 울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정작 안전에 대한 제대로 된 투자는 패싱하면서 대통령까지 “면허취소”를 언급하며 기업만 압박하자 건설 현장은 마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일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감전사고를 당했던 포스코이앤씨는 지난주부터 전국 공사 현장 80여 곳을 올스톱하고 작업을 멈췄다. 지난 8일 의정부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 추락사고가 났던 DL건설도 강윤호 대표와 최고안전책임자를 비롯해 모든 임원, 현장소장 등이 사표를 제출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이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작업자 개개인에 1대1로 안전관리자를 붙일 수도 없지 않냐”며 “처벌 등 공포 분위기로만 몰아세운다면 결국 현장을 돌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