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와 SK 하이닉스가 인접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반도체 클러스터’로 연결되는 LNG 열병합발전소 연료 공급관 건설 루트를 대폭 변경했다. 안성시가 반도체 클러스터를 기피시설로 지목해 안성 내부로 통하는 당초 계획에 반발하자 용인시는 어쩔 수 없이 공사 기간이 더 걸리는 우회로를 만들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 계획 대로라면 올해 가동에 들어갔어야 할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근 지자체와 주민 등의 반발로 완공 시기가 2027년 5월로 29개월가량 늦춰지게 됐다.
◇“우리 지역은 못 지나간다”
용인시는 21일 원삼면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까지 연결해야 할 LNG 공급관을 최근 양지면 쪽으로 우회하는 양지IC 인근 국도 아래에 매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국토교통부는 교통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안성시 고삼면을 관통하는 도로에 가스관을 설치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지난해 10월 안성시 측에 도로굴착 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안성시는 5개월 간 인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국토부 원안은 가스관이 용인시 남사읍 한국가스공사 관리소에서 시작해 안성을 거치도록 돼 있었다.
LNG 발전소 건설이 필수적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415만㎡(약 126만평) 규모로 총 120조원이 투입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생산 공장인 팹 4개 동(200만㎡), 협력사 단지(46만㎡), 주거 등 인프라단지(40만㎡) 등이 들어서는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경기도는 “2025년이 되면 경기 남부에 최대 19개 라인·8만9000명이 일한다”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근 지자체들의 반발로 반도체 조성 사업은 계속 연기되고 있다. 안성시는 2020년 1월에도 반도체 공장의 오·폐수가 관내로 유입된다며 1년 가량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미뤘다. 여주시도 2022년 6월 용수 공급을 위한 인허가에 반대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가 두 지자체에 지원을 약속하고 갈등을 봉합하고 나서야 그나마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주변 지역 개발 역시 당초 기대와 달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클러스터 조성 계획 발표 당시만 해도 황량한 시골이던 원삼면 일대가 빠르게 도시화할 것이라던 예상도 완전히 빗나갔다.
◇정부는 발표만 하고 ‘나몰라라’
지역 ‘님비’ 현상이 심화하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시점이 더 늦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안성시와 안성시의회는 LNG 발전소, 송전선로 등과 같은 필수 기반시설 건설 자체를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국가적 역량을 모아도 모자랄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이 계속 지연되고 있지만, 정부와 경기도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자체 간 갈등이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도, 정부와 경기도는 용인시와 SK하이닉스를 지원하기 보다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SK하이닉스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 ‘일반산업단지’로 추진되고 있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일반산업단지는 일반 기업이 사업을 주관하다 보니 주민들이 각종 보상을 요구하더라도 기업이 거부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자체장들이 금전 보상을 하라고 기업을 은근히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SK하이닉스 사업이 ‘님비’에 발목 묶인 가운데 용인시는 또 다른 걱정에 빠졌다. 삼성전자가 용인 남사읍에 대규모 반도체 단지를 건설계획을 추가로 발표했는데, 지역 주민들이 각종 보상을 요구하는 등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 때문이다.
김영리/조철오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