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책금융 놔두고 주주에 손벌린 한화에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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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포커스]한화에어로 3.6조 유증 둘러싼 논란
정책금융 차입 3412억 증가 그쳐…대출·부채관리 충분해
"주주희생 유상증자 먼저였나"…시장·금융권 이례적 평가
에어로 "11조 투자 일부" 설명…정책금융 외면 논란 여전
“자금조달 과정 투명한 설명·정당성 입증은 반드시 필요”

  • 등록 2025-04-28 오전 6:00:00

    수정 2025-04-28 오전 6:00:00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달 3조 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가운데 같은 시기 수출입은행 차입은 3400억원 증가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정책금융 차입 여력이 있었지만 부채비율 관리 등을 이유로 유상증자를 선택했다. 이를 두고 시장과 금융권에선 주주 희생을 수반하는 조달 수단을 먼저 선택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투자 명분은 방산 확대였지만 실제 자금조달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유증 선택은 부채비율 관리 때문”

27일 수출입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출한 자료를 이데일리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어로)가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조달한 여신 총액은 2조 3199억원이다. 지난해 4분기(1조 9787억원) 대비 3412억원 늘어났다. 지난해 1분기(2조 2124억원)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한화에어로의 수은 여신 규모에서 주목할 점은 1조 8559억원, 즉 약 80%가 이행성 보증(RG) 형태라는 점이다. 이행성 보증은 수은이 한화에어로의 수출 계약 불이행 시 대신 계약금을 반환하는 방식으로, 직접 대출과 비교해 수은으로선 리스크와 이자율 모두 낮다. 수출 관련 대출 2024억원, 수입 관련 대출 1000억원 등 실제 현금성 자금조달은 4639억원이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 한화에어로의 신용공여 한도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화에어로가 정책금융 차입 여력이 충분한 상황이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한화에어로는 주주 가치를 희석하는 방식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선택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유증에 앞서 은행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은 것은 부채비율 관리가 이유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화에어로의 부채비율이 높은데 이는 방산 호황기에 선수금 등의 영향으로 오히려 긍정적으로 봐야 할 면이 있다”며 “높은 부채비율은 해외 입찰 과정에서 감점을 받을 수 있는 요소여서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은행 차입보단 유증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도 비슷한 이유를 설명했다. 안병철 한화에어로 전략총괄 사장은 지난 8일 ‘미래 비전 설명회’에서 부채비율 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부채비율이 400%에 달하는 상황에서 회사채나 추가 차입은 불가능했다”며 “해외 고객사는 선수금을 포함한 총부채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는 수주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채비율 큰 문제 아냐…소액주주만 희생”

그러나 시장에선 부채비율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한화에어로는 지난해 4분기 한화오션을 종속기업으로 편입하면서 자본총계가 증가해 부채비율이 281.3%까지 낮아졌다. 이는 같은 해 3분기(397.4%)에 비해 급격히 개선됐다. 한화에어로는 4년간 11조원 투자계획을 밝혔는데 이를 외부에서 조달하더라도 부채비율를 400% 이하로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한화에어로는 지난 2월 한화오션 지분을 대거 인수하면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사용했다. 방산 부문 시너지 제고라는 전략적 명분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단기 부채비율이 급등했다. 이후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겠다고 발표해 투자자 사이에선 “먼저 돈을 쓰고, 나중에 채우는 수순 아니냐”고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실제 한화오션의 수출입은행 여신 잔액은 지난해 4분기 8조 805억원에서 올해 1분기 7조 5374억원으로 약 5000억원 감소했다. 수은 관계자는 “이행성 보증이 마무리되면서 여신이 줄어든 결과다”고 언급했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시기와 한화에어로의 한화오션 지분 인수와 유증 발표 시기가 맞물린다는 것이다. 한화에어로는 이 인수를 통해 오히려 연결 재무제표상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유상증자를 했다는 해명이 힘을 잃는 이유라고 시장에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유증이 전체 11조원 투자 계획의 일부이고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정책금융 차입도 확대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의 설명에도 투자자와 시장에선 지속적으로 유증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 자금조달 순서를 보면 유증이 선제로 이뤄졌고 정책금융은 보증 중심으로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투자처가 명확히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시장으로부터 먼저 조달한 것인데 금융권에서조차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이남우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화에어로가 막대한 방산 수출과 투자 계획을 앞두고 그에 걸맞은 자금 조달이 필요했을 수도 있지만 그 방식이 반드시 소액주주의 희생을 수반하는 유증이었는지 물음표다”며 “정책금융 여력이 충분했던 상황에서 이뤄진 유상증자는 시장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어 앞으로 자금조달 결정 과정의 투명한 설명과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인영 의원은 “유상증자로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고 시장 신뢰를 뒤흔든 이번 사안에 대해 솜방망이 심사나 면죄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금융당국은 단순한 형식적 요건 충족 여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유상증자의 필요성과 정당성, 그리고 자금조달 과정의 투명성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철저하고 엄정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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