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의 항공기 인도 시점이 갈수록 늦어지면서 국내 항공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구매한 항공기를 제때 받지 못해 유지비가 많이 드는 낡은 기체를 계속 쓰는가 하면 신규 노선 증편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항공기 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기간이 지난 6년간 33% 늘었다”며 2030년까지 공급 지연 사태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달 초 미국의 항공부품 관세 정책이 나오면 기존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항공기 제작기간이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주문부터 인도까지 평균 6년
20일 IATA에 따르면 올해 항공기 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6년으로, 1년 전(5년4개월)보다 8개월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4년6개월)과 비교하면 6년 만에 33% 길어졌다.
보잉과 에어버스의 항공기 제작기간이 길어지며 ‘수주 잔고’는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다. IATA는 올해 글로벌 항공기 수주 잔고가 1만7000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직전(1만 대 수준)과 비교하면 1.7배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IATA는 현재 쌓인 수주 잔고를 다 인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14년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인기 기종인 보잉 737의 연간 인도 물량(265대) 대비 수주 잔고(4860대)를 고려하면, 지금 새로 주문을 넣을 경우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달 초 윌리 월시 IATA 사무총장이 “항공기 인도 지연이 항공업계 성장을 막고 있다”며 올해 항공업계 순이익 전망치를 366억달러(약 50조원)에서 360억달러(약 49조2000억원)로 낮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공기 도입이 늦어지는 건 코로나19 당시 무너진 공급망이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탓이다. 당시 보잉과 에어버스를 비롯해 여러 부품사가 공장 문을 닫은 탓에 상당수 숙련 근로자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항공기의 필수 원자재인 티타늄과 니켈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작년 말 16년 만의 파업으로 보잉이 두 달간 공장 문을 닫은 것도 한몫했다. 에어버스는 미국 CFM인터내셔널에서 엔진을 제때 납품받지 못해 공장을 100% 가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항공사들도 타격
양대 항공기 제조업체들의 생산 차질은 국내 항공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항공은 연내 보잉 항공기 30대를 들여오기로 했지만 최근 2027년으로 늦췄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에어버스 여객기 30대 도입 기한을 2031년으로 미뤘다. 제주항공은 보잉 여객기 40대를 넘겨받는 시점을 2023년에서 2027년으로 연기했지만, 실제론 2029년에나 인도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손발이 묶인 항공사들은 연비가 떨어지고 정비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노후 여객기를 계속 쓰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급 부족으로 항공기 리스료가 2019년 대비 30%가량 오르면서 재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도입 시점에 맞춰 신규 노선을 취항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 초로 예고된 미국의 항공사 부품 관세가 항공기 생산 기간을 더 늘리는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국 항공기 부품사 하우멧에어로스페이스가 최근 보잉과 에어버스에 “관세로 인해 일부 부품 납품이 중단될 수 있다”고 공지하는 등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