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기준' 보도자료서 거론했다 슬쩍 뺀 금감원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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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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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7일 보도자료에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조정하는 정부 세제 개편안에 대해 언급한 문구를 넣었다가 약 30분 만에 이 부분을 삭제한 수정 자료를 재배포했다. 현장과의 소통을 내세운 간담회였지만 대통령실 기조와의 충돌을 우려해 현장 의견을 일부 걸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의 자료는 이날 금감원이 배포한 '금감원-금투협, 자본시장 현장전문가 간담회 공동 개최' 보도자료다. 엠바고(보도시점 제한)는 이날 오전 11시였다.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와 세제 개편안 등 대내외적 굵직한 환경 변화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자본시장 분야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한 개인·글로벌 투자자들의 건의사항을 듣겠다는 게 이번 간담회의 취지였다. 간담회에는 금감원 금융투자협회장과 금감원 부원장보를 비롯해 국내외 주요 증권·운용사 임원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오전 8시48분 이 자료를 배포한 뒤 30분가량 뒤 금감원은 수정된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했다. 새 보도자료에서는 '한편 대주주 양도세 부과기준 변경 등 세제 개편 사항은 새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과 일관성 있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이 문구는 당초 증시 부양을 위한 주식시장 국내외 투자자 주요 의견 중 하나로 들어가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확정 전의 내용들이라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삭제된 문장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증시 부양책과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기준 강화 사이의 정책 혼선에 대한 시장의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종목당 50억원이던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으로 낮추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과 증시 하락을 불러왔다.

양도세 부과기준 재검토에 대한 대통령실과 여당의 입장이 달라 혼선이 있는 상황이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려가 크다"며 재검토를 시사했지만, 대통령실은 하루이틀 주가 변동만으로 개편안을 다시 손보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다만 이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관련 논의가 숙성되면 경청할 자세는 됐다"고 밝혔다.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감원은 해당 문장이 정부 정책 기조와 충돌해 혼선을 줄 수 있단 정무적인 판단에 따라 뺀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의견을 수렴해 감독당국으로서 피드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정책 결정의 주체가 아닌 만큼 대외적으로 정부 기조에 반대되는 표현을 쓰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시장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마련한 자리에서 정작 시장의 중론인 불편한 의견은 걸러내야 한다는 데서 고민이 있었다"면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엇박자 등으로 읽힐 수 있어 예민한 사안의 경우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증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현장 간담회가 시장 의견을 담지 못한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에서는 세제 개편안이 증시 활성화라는 타깃에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컨센서스'(의견 일치)를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한 간담회 참여자는 "국민의 자산증식 수단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바꾸겠다면서, 부동산 시장 대비 세율이 한없이 과도하다는 날 선 비판이 여럿 나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집행기관과 대통령실 간 정책 기조에 대한 사전 조율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때문에 금감원이 민감한 한 문장을 삭제한 단순 해프닝으로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상법 개정이나 자사주 소각 등으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동시에 세금 부담을 키우면 주식시장은 혼란스럽다"며 "개편안 일부 내용에 대한 투자자들과 시장 비판이 큰 상황인데, 민감하다고 해서 의견을 누락시키면 간담회 자리의 의미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민경/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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