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예종이 서울에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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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예종이 서울에 있는 이유

“월세를 어떻게 구하지. 작년 것부터 못 냈는데.”

뮤지컬 ‘렌트’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픔과 사랑을 그리며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거머쥔 명작이다. 월세(렌트비)가 밀려 있는 싱어송라이터 로저와 영화감독 지망생 마크를 중심으로 무용수, 드러머, 공연 기획자들이 뮤지컬을 이끈다. 30년 전 작품이지만 올해 2월 서울 공연도 대성황이었다. 가을에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뮤지컬 산업의 양대 산맥 가운데 한 곳인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새로운 버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예술가들은 왜 뉴욕으로 가나

그런데 ‘렌트’의 등장인물들은 왜 뉴욕에 살까. 월세는커녕 난방비조차 버거운 형편이면서 왜 기어이 땅값 비싼 뉴욕에 매달리냐는 것이다. 뉴요커라는 간판이 없으면 예술이 안 되나.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도 그렇다. 젊은 화가 지망생들은 뉴욕 맨해튼의 달동네 그리니치빌리지에 다닥다닥 모여 살았다. 폐렴 약값 한 푼 벌지 못하면서 굳이 뉴욕에 살았다.

실제로도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뉴욕에서 터를 잡았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 ‘추상화가’ 김환기, ‘무용가’ 안은미도 그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청년 예술가들이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

뉴욕에 붙어 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예술가들이 떠오른 것은 최근 국회에 발의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때문이다. 법안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한예종의 숙원 사업인 석·박사 학위 과정 설치와 서울 석관동(연극·영상·미술·전통예술), 서초동(음악·무용), 대학로(예술연구)에 있는 캠퍼스의 광주 이전이다. 석·박사 과정을 만들어주겠다는 ‘당근’으로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줄이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게 법안의 취지다.

국가균형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헌법적 가치로 정치권의 움직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법안 취지대로 예술 분야에서 국가대표급 재능을 갖춘 학생 4400여 명이 광주로 내려가 준다면 문화 격차 해소에 기대를 걸어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한예종을 국가균형발전의 주춧돌로 쓸 수 있는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한예종이 서울을 벗어나서도 지금과 같은 존재감을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문화예술 인프라가 가장 집적된 도시다. 삼청동과 평창동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고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가나아트센터, 학고재 등 100개 이상의 화랑이 몰려 있다. 서초동 예술의전당 안에 자리 잡은 한예종 음악원과 무용원 캠퍼스는 두말할 것도 없다. 오페라하우스, 음악당, 토월극장, 예약당(국악)이 지척이다.

한예종 학생들은 학교가 서울에 있는 덕분에 세계적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손쉽게 만난다. 서울에서는 오디션 기회가 많고, 전공과 관련한 아르바이트 자리 역시 많다. 서울의 예술 토대를 십분 활용한 것이 지금의 한예종이다.

굳이 한예종 설치법을 만들겠다면 법안의 제1조를 깊이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이 법은 예술 영재 발굴 및 체계적인 예술 교육을 통한 세계적 수준의 창조적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치하고 그 운영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한국 예술의 지속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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