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규제개혁 요청하니 ‘장기검토과제’로 지정… 이러다 ‘암반 규제’ 된다”

1 day ago 2

최승재 중소기업 옴부즈만
규제 개혁 처음과 끝 ‘현장’ 연계 필요… 방심하면 꺼진 규제도 다시 살아나
중앙 부처에서 규제 삭제해도… 지방이 관심 없으면 ‘도루묵’
공무원 규제 개혁 의지 제고 위해… 대통령, 총리 등이 임기 내내 챙겨야
규제를 규제라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하고 강력한 통로 확보 중요

최승재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개혁은 기업 활동에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최승재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개혁은 기업 활동에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후보 지명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규제 개혁을 언급했다. 김 후보자는 “규제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어젠다 세팅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규제 개혁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규제 개혁을 외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인들로부터 규제 개혁 건의를 청취하는 최승재 중소기업 옴부즈만(58)은 “기관장끼리 없애기로 합의한 규제가 시간 끌기로 버티다 살아난 경우도 봤다”며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꺼진 규제’도 다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를 없애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나서질 않는다는 얘기다. 규제 하나를 없애려면 해당 규제에 관련된 모든 이해 관계자를 설득해야 한다. 매우 귀찮고 어렵다. 그동안 해 오던 대로만 하면 공무원에게 불이익이 없는데 어떤 공무원이 나서겠나. 규제를 없애려면 규제를 움켜쥔 공무원들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관심을 갖고 계속 독려하는 게 중요하다. 규제 개혁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때로는 채찍도 들어야 한다.”

―‘귀찮고 어렵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규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뭔가를 보호하고 더 잘하게 하려는 긍정적 의미의 ‘제도’다. 둘째는 뭔가를 못 하게 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협의의 규제’다. 규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긍정적인 제도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협의의 규제로 변질된다. 이건 필연이다. 공무원들이 규제를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관성에 따라 제도의 측면에서만 규제를 바라본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꺼진 규제도 다시 보자’는 말은 무슨 뜻인가.

“얼마 전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접수된 규제 개혁 건의를 해당 공공기관에 전달했다. 문제점을 인식한 기관장이 개선을 약속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현장을 확인해 보니 규제가 그대로 남아 있더라. 담당자는 규제를 없앨 시기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시간 끌기다. 이러다가 기관장이 바뀌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 해결했다고 생각한 규제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규제를 없애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규제의 시작과 끝을 모두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특히 규제를 없애거나 개선한 뒤에도 현장에 잘 적용되고 있는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A라는 규제를 없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A1, A2의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규제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규제 개악’이 된다. 개선을 다시 요청해도 해당 공무원들은 이미 개선했다는 이유로 또 들여다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규제 신고를 받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인들로부터 규제 개혁 신고를 접수하면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1차로 검토한 뒤 해당 부처에 보내고 답신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요즘 부쩍 담당 공무원들의 답변 가운데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많다. 이른바 ‘장기 검토 과제’로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규제를 없애야 하는 우리에게는 장기 검토 과제가 가장 무서운 말이다. 차라리 ‘개선 불가’라고 답변이 오면 그 논리를 깨기 위해 토론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답변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담당 공무원들과 원활한 관계가 필수이기 때문에 ‘빨리 처리하라’고 압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얼마나 해결되나.

“지난해 접수된 규제 개혁 신고 건수는 5093건이다. 이 가운데 2183건에 대해 해당 기관으로부터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규제 개혁 노하우가 쌓이면서 개선 건수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총 70회의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일주일에 평균 2, 3일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다.”

―기억에 남는 규제 개선 사례가 있나.

“얼마 전까지 노래연습장에서 손님이 주류를 몰래 반입한 경우에도 업주가 처벌을 받아야 했다. 실제 현장에서 손님이 가방이나 옷 속에 주류를 숨겨 들어오는 것을 업주나 직원이 사전에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경우 업주가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도록 예외 조항이 마련됐다.”

―다양한 애로 사항도 해결한다고 들었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공고, 안내, 신청서 등을 이메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외국인이 읽는 문서인데도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글(hwp) 파일’로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인은 파일을 열어보는 것조차 어렵게 된다. 행정 편의적 관행이었다. 외국인들로부터 이 애로사항을 접수한 뒤 ¤글 파일 외에 다른 범용 파일 형식도 병행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해 결국 개선됐다.”

―지금 처리 중인 규제를 소개한다면….

“지난달에 전남 목포 김 양식장을 갔다. 김은 ‘검은 반도체’라 불릴 정도로 산업 전체가 성장하고 있다. 반면 숙련된 인력 수급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소규모 산업일 때는 ‘노동의 질’이 문제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대한 기계와 때로는 첨단 장비까지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정부 정책상 비전문직 외국인 노동자들은 3년만 체류할 수 있다. 일을 깨칠 만하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김 산업은 더 이상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조선업이나 건설업 등 거대 산업군 말고 김 산업에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정부의 여러 부처와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림자 규제’, ‘암반 규제’란 말도 있다.

“법률에 근거가 없는데도 지방정부의 조례나 규칙 등에 숨어 잘 드러나지 않는 규제를 ‘그림자 규제’라고 한다. 그림자 규제는 그대로 세월이 지나면 더욱 견고해져 바위 같은 ‘암반 규제’가 된다. 이런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방 공무원들이 규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규제를 풀었는데도 지방에서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모텔 등 숙박업소를 도로에서 50m 떨어져 영업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가 이 규정을 완화해 지자체에서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J시는 곧바로 관련 규제를 없앴는데, 바로 옆 I시는 이 사실을 몰랐고 최근까지 이 규제가 남아 있었다.”

―지금 당장 규제 개혁이 시급한 분야는….

“인공지능(AI)과 신재생에너지 관련 분야다. 이 분야의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 산업 중심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은 기반이 튼튼한 대기업보다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치명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파도를 활용한 파력 발전은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에서도 제외돼 있는 상태다.”

―새 정부도 규제 개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규제 개혁에 뾰족한 수는 없다. 일단 집권 초기 강력한 리더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관심을 가지면 일정 부분까지는 좋아질 수 있다. 이런 성공 경험이 누적되면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일선 공무원들도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규제 개혁이 일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규제 개혁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모든 국민이 ‘이것이 규제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확실한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 옴부즈만도 그중 하나다. 숨은 규제를 찾아내 공론화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규제 개혁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새 정부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정부 전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큰 전봇대 같은 규제들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더 아픈 규제는 ‘손톱 밑 가시’다. 이런 규제를 해소하려면 대통령이 임기 내내 규제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집권 초기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떠날 듯이 요동하게 하더니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로 끝나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 옴부즈만
옴부즈만은 행정기관에 제기된 민원을 조사하고 해결하는 ‘대리인’을 뜻하는 스웨덴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규제 개선과 애로 해소 업무를 전담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소속이지만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임기는 3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최승재 중소기업 옴부즈만(58)
△1967년 출생
△2011∼2015년 중소기업중앙회 이사
△2014∼2020년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2015∼2016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2015∼2017년 중소상공인희망재단 이사장
△2015∼2019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2020~2024년 제21대 국회의원
△2020~2022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2020~2023년 국민의힘 소상공인위원장
△2022~2024년 국회 정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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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산업2부장 kky@donga.com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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