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치 문지방을 밟고 있는 사람처럼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심청'이라는 작품을 들고 국경, 장르, 언어의 경계를 넘어 고국에 돌아와 기대되고 흥분됩니다."
국립창극단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공동 제작하는 '심청'의 연출과 극본을 맡은 요나 김은 10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연출은 2017년 유럽의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가 '올해의 연출가'로 선정한 세계적인 연출가다. 지난 20여년간 유럽에서 활동하며 30여편의 오페라를 연출하고 6편의 현대 오페라 대본을 썼다. 지난해에는 국립오페라단의 '탄호이저'로 한국 관객을 만났다.
요나 김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판소리 기반 작품에 도전한다. 박유전 명창이 창시한 판소리 유파인 '강산제'의 심청가와 김연수 명창의 '동초제' 심청가를 토대로 총 130명의 출연진이 등장하는 대작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과거에 요나 김과 합을 맞춘 독일 오페라 창작진도 합세했다. 헤르베르트 무라우어가 무대 디자인, 팔크 바우어가 의상 디자인을 맡는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바우어는 "한복은 다양한 층위, 색깔과 형태를 갖고 있다"고 평가하며 "현대적인 소녀가 한복을 입자 변신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껴 현대와 전통이 혼합된 의상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탄호이저'에 참여한 프랑크 쇤발트 의상 어시스턴트, 벤야민 뤼트케 영상 디자이너도 합류했다. 뤼트케는 "판소리에 담긴 소리, 감정, 리듬을 받고 감명받았다"며 "판소리라는 새로운 세계를 빨리 무대에서 경험하고 싶다"며 소감을 말했다.
작품은 요나 김 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심청을 그릴 예정이다. 심청가에 담긴 이야기의 폭과 깊이에 놀랐다고 말한 김 연출은 "이야기를 파고들수록 효도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수많은 상징과 해석이 담긴 작품이라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청은 아버지뿐 아니라 약자를 위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해석하며 "사회가 정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문제의식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심청'을 창극이나 오페라가 아닌 '판소리 시어터 (판소리극)'로 분류했다. 구체적인 장르를 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요나 김은 "인간의 감정을 노래와 연기로 전하기 때문에 '극'이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장르를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며 "이런 시도가 릴레이처럼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세계 무대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김 연출은 "'눈먼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딸'이라는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독일 동화까지 전 세계 어디서든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시대, 장소, 남녀노소 상관없이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나 김이 연출하는 '심청'은 8월 13일과 14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9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