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속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열쇠로 문을 열고, 그 시절로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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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속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열쇠로 문을 열고, 그 시절로 큐"

어떤 색깔도 칠해지지 않은 순수하고 행복한 마음의 풍경. 이 한 폭의 그림을 동심(童心)이라고 부른다. 현실과 마주하다 보면 점점 잊혀가는 그것을 울긋불긋한 ‘꽃의 여왕’ 장미가 되살린다. 올해로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은 에버랜드 장미축제 얘기다.

장미축제를 요약하면 이렇다. ‘40년간 8000만 송이의 장미가 피고, 6000만 명이 찾은 축제.’ 에버랜드는 1976년 자연농원 간판을 달고 개장할 당시 장미원(로즈가든)에 3500그루의 장미를 심었고 10년 후 장미축제란 이름으로 국내 꽃축제의 서막을 열었다. DJ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수많은 라디오 공개방송이 로즈가든에서 진행됐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화사한 장미꽃밭을 거닐며 평생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로즈가든에서 본 장미성. /에버랜드 제공

로즈가든에서 본 장미성. /에버랜드 제공

이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손주까지 볼 무렵이 돼서일까. 올해 장미축제는 예년과 사뭇 달라졌다. 마스코트 ‘사막여우 도나’가 그렇다. 테마파크 마스코트 특유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 대신 300만 송이 장미가 만발한 비밀의 화원을 지키는 수호자 같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로즈가든의 상징인 장미성은 세월의 흔적을 벗고 유럽 르네상스풍 궁전이 됐다. 장미축제의 스토리에 예술 콘텐츠를 결합한 시도다.

이 변신을 지휘한 건 세밀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알린 다리아 송(송지혜) 작가(사진). 럭셔리 브랜드 디올이 야심 차게 선보인 콘셉트 스토어 ‘디올성수’의 독특한 일러스트로 잘 알려진 그가 6개월을 매달려 만들었다. 지난 12일 만난 그는 어딘가 ‘어른아이’ 같아진 로즈가든에서 동심을 강조했다.

“어른이 돼서도 어린 시절 느낀 행복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동심의 세계에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 시간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사막여우 도나가 달라졌죠. 마냥 귀엽고, 흔한 캐릭터 같은 접근에서 벗어나려 했어요. 사랑스럽고 웃기만 하는 대신 소중한 정원의 장미를 지키느라 어딘가 새침한 표정도 지을 줄 아는 그런 여우 ‘도나 D.로지’로요. 에버랜드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장미품종(에버로즈 등 40여 품종)이 만들어졌는데 그걸 다루는 직원들을 ‘로자리안’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장미축제를 찾는 모두가 로자리안 도나와 함께 장미정원을 지킨다는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가 그려 넣은 장미 드로잉들은 하나 같이 생김새가 다르다. 그동안 에버랜드가 만든 모든 품종 이미지를 전부 다 그려내려고 했다고. 색깔부터 모양까지 다양한 종류의 장미가 축제 공간에 펼쳐진다.

동심을 강조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지브리풍 그림도 떠오른다. 송 작가는 “어떤 그림을 보면서 스치듯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순수회화를 벗어나 대중적인 일러스트레이트 작업을 시도한 것도 ‘그저 행복하던 한때’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올라요. 그가 펼쳐낸 에스키스, 스케치들을 보고 감동 받아서 작가의 꿈을 꿨죠. 수공예 느낌이 강한 세밀화 드로잉을 그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한땀 한땀 만들어낸 작품이 주는 감동은 다른 것에 비할 수 없으니까요.”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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