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은주]국민이 주권자로서 ‘효능감’을 가질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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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반복되면 ‘학습된 무기력’ 생긴다 여겨
최근 연구 “무기력은 뇌의 기본 설정일 뿐”
“이게 되네?” 소소한 성취 쌓이면 극복 가능
“누굴 뽑아도 거기서 거기” 극복 계기 되길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살다 보면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매우 드물긴 하나) 별반 애쓰지 않았는데 일이 성사되는 경우도 있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극과 극으로 상반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나의 행동과 결과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1967년 ‘비교 및 생리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고전적 연구에서는 그물에 네 개의 구멍을 뚫어 다리만 내려오도록 개들을 매달고, 강도와 빈도를 조금씩 다르게 해서 여러 차례 전기충격을 주었다. 24시간 뒤, 연구진은 이 가엾은 개들을 다른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하고, 개들이 상자 중간에 설치된 낮은 장벽을 뛰어넘으면 전기 충격을 멈추었다. 전날 그물에 매달린 채 속수무책으로 전기충격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개들은 전기충격을 받지 않았던 개들에 비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탈출 시도를 하거나,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포기한 상태로 충격을 견디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앞서 전기충격을 반복해서 받은 개들은 충격에 익숙해져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2차 실험에서 전기충격의 강도를 한층 높여도 개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디 동물뿐인가. 1974년 ‘실험심리학 저널’에 출판된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전기충격 대신, 해롭지는 않으나 불쾌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을 들려주고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소음을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후 다른 환경에서 소음을 경험하게 됐을 때 무기력한 태도를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굳이 본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경험하게 하지 않고도 유사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참가자들에게 본인의 ‘능력’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면 소음을 멈출 수 있다고 알려준 경우와 요행히 잘 ‘찍으면’ 소음이 멈출 것이라고 알려준 경우, ‘우연’ 조건 참가자들은 ‘능력’ 조건 참가자들에 비해 소음을 멈추려는 시도를 선뜻 하지 않았고 소음을 멈추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실패할 확률도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본인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 사람들이 무기력을 학습하게 됨을 시사한다.

얼마 전까지도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은 다양한 맥락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기제로 언급돼 왔다. 학생이 반복해서 시험에 떨어진 뒤 “나는 해도 안 돼”라는 무력감에 빠져 공부 자체를 포기한다거나, 직장에서 “내가 뭘 해도 인정을 못 받는다”며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 직원들의 사례가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들은 무기력이 실패 경험의 결과로 학습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뇌에 기본적으로 설정된 본능적 반응이고, 오히려 반복된 성공 경험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외부 위협에 노출되면 인간은 일단 포기부터 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지만 소소한 성공이 반복될수록 뇌가 통제감을 학습하게 되고, 그 결과 무력감을 억제하고 문제 해결을 시도하도록 변화한다는 것이다.

무력감이 타고나는 것이든, 후천적으로 좌절의 경험을 통해 학습되는 것이든 중요한 것은 작은 성취의 경험이 쌓여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으로 이어지고, 이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점차 더 큰 과제에 도전하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는 점이다. 희망회로를 자극하는 “하면 된다”는 구호를 따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거창한 목표를 좇기보다는, “되면 한다”는 자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유효한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이게 되네?” 하는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연구에서도 전기충격 실험을 진행한 뒤 48시간이 지나 같은 개들을 다시 테스트했을 때, 이번에는 전기충격을 받지 않았던 개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장벽을 넘어 탈출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결과는 학습된 무기력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계기나 경험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제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이재명 잘 뽑았다’는 효능감과 자부심을 가지실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다짐대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일그러지고 구멍 난 부분들을 차근히 바로잡고 메우는 과정을 통해 주권자인 국민들이 “누구를 뽑아도 거기서 거기”라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다시금 효능감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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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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