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新통상전략 토대는 ‘미런 보고서’
약달러-고관세-美전략산업 육성 등 추구
2+2 협의는 韓美 간 단순 무역 조정 아냐
美 중심 경제안보 체제에 편입 계기 될 것
미런 보고서는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전략 보고서다. 약(弱)달러 정책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고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통해 수입을 억제하며, 전략산업 보호를 추구한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안보 제공과 달러 시스템을 ‘글로벌 공공재’로 정의한 뒤 이를 기반으로 무역 혜택과 안보 협력을 연계해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 구상을 제안한다. 제조업 부흥을 위해 전략산업 육성을 강조하지만 약달러 정책은 시장 불안과 금리 급등 등으로 현실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결국 고관세 정책 수단만 작동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반쪽짜리 전략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향후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침을 담고 있다.
4월 24일 열린 한미 2+2 통상 협의의 첫 번째 주요 의제는 상호 관세 및 품목별 관세 문제였다. 한국은 자동차 분야 관세 면제를 요청하며 신뢰 파트너임을 강조했고, 양국은 7월 8일 상호 관세 유예 종료 전까지 △관세 및 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 협력 △환율 정책 등 4개 분야에서 가시적 진전을 도출하기로 협의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이었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과 관련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투자의향서 발표를 기대하고 있다. 총 사업비가 440억 달러(약 62조77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한국으로서는 재정 부담 우려가 커 섣불리 참여를 결정할 수 없다.셋째, 미 조선산업 재건에 대한 한국의 협력 의지가 논의됐다. 친환경 선박, 군수조선 등 첨단 분야 협력 기회가 존재하며, 미 국방부·해군의 함정 정비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의 미 조선소 인수 등도 기대할 수 있어 향후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는 사안이다.
이 같은 2+2 통상 협의 내용은 미런 보고서의 경제안보 전략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미런 보고서가 대외 의존 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재편하자고 한 것처럼, 2+2 협의도 관세 및 비관세 조치를 통한 미 산업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동맹국과의 투자 협력 강화 역시 양쪽의 핵심 주제다. 환율시장 공정성 확보 요구 또한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공급망 및 투자정책을 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조정하라는 미런 보고서의 제안은 2+2 협의의 경제안보 및 투자 분야 논의와 그대로 연결된다. 알래스카 LNG 사업과 조선산업 협력 논의는 동맹국 경제를 미 산업 정책에 연계하려는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감안할 때 7월 8일까지 도출될 ‘7월 패키지’의 윤곽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관세와 투자 문제는 상호 양보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내는 모양새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할 것이다. 경제안보와 공급망 이슈는 협력 강화라는 원칙 아래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조율될 가능성이 높다. 환율 문제는 일단 시장원칙 존중이라는 원론적 합의에 머물고, 실질적인 정책에 대해선 양국이 일정 부분 남겨둘 것으로 보인다.이번 2+2 통상 협의의 본질을 단순한 무역과 투자 조정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미국은 경제안보를 내세워 관세, 투자, 환율, 공급망 전반을 관리하는 체제를 만들고자 한다. 한국은 이에 대응해 산업 경쟁력과 정책 자율성을 지켜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양국 간 협력 강화가 표면적으로 강조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제 통상질서가 경제안보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 한국도 좀 더 깊숙이 편입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 역시 협상의 구체적인 결과에 대해 내부적으로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이 충분히 준비된 논리와 균형 잡힌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면 미국도 이를 수용하거나 참고할 여지가 있다. 이는 단순한 방어를 넘어 암묵적으로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치밀한 준비와 계산된 제안을 통해 변화하는 경제안보 통상질서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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