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렇다. 주목을 받으면 별칭도 많다.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랬다. 빈자(貧者)들의 성자, 행동하는 개혁가…. 개중엔 “최초의 록스타 교황”(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도 있다. 아이돌 가수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렸단 뜻이나, 여기엔 계기가 있다.
2015년쯤이다. 교황은 본인 명의로 록 앨범 ‘깨어나라!’를 발매했다. 실은 노래를 부른 건 아니다. 청년들을 위한 설교 말씀에 음악을 깔았다. 물론 이전 교황들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허나 록 음악을 쓴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음악은 시작부터 놀랍다. 찌릿찌릿한 기타 리프(riff)로 포문을 연다. 실험적인 진보를 추구하는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스타일이다. 묘하게 교황의 온화한 목소리가 어색하지 않다. 누군가는 댓글에 “파파(papa·교황) 플로이드”란 찬사도 보냈다. 전설적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떠오른단 농이다.당시 너무 파격적이란 지적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는 반가워했다. 평소 교황이 보여준 진정성 때문이다. 언제나 낮은 자세로 청년 세대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서전 ‘희망(Hope)’에선 쌈박질을 일삼던 10대 말썽꾸러기 시절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저 한마디. “다만 중요한 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며 젊은이들을 다독였다.
MZ들 눈높이 맞춘 낮은 자세
교황에 비할 바는 아니나, 국내 불교계도 MZ세대 마음을 끄는 화젯거리들이 있다. ‘화엄사 극락버거’도 그중 하나다.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유서 깊은 사찰. 봄마다 피어나는 홍매화가 아름답지만, 요즘 ‘꽃보다 버거’가 유명세를 탔다.극락의 맛인진 모르겠다. 그래도 소셜미디어에선 난리가 났다. 콩고기로 만들어 “스님도 먹는 채식 버거”. 올 초 서울 한 쇼핑몰 등에 차려진 팝업스토어는 한 달 만에 5000여 명이 다녀갔단다. 함께 파는 ‘왕생 핫도그’ 인기도 만만찮았다. 둘 다 먹으면 극락왕생(極樂往生)한단 우스갯소리도 나왔다.최근 조계종은 이렇듯 젊은 감각에 눈높이를 맞춘 시도가 적지 않다. 연애프로그램 ‘나는, 솔로(solo)’에서 착안한 ‘나는, 절로’ 열기도 기대 이상이다. 지난달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열린 커플 매칭 행사는 24명 선발에 1300여 명이 지원했다.
바람 불어도 초목은 솟아난다
종교계의 이런 시도에 혀를 차는 이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처신이 가볍단 가톨릭 내 반발이 내내 따라다녔다. 하지만 천주교는 교황 재임 12년 동안 신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아프리카는 1억7600만 명에서 2억8100만 명으로 약 60%나 증가했다. 상당수가 10∼30대다. 불교 매체에 따르면 불교도 최근 3년간 꾸준히 신자가 늘고 있다. 특히 20대 여성 불자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종교가 허구한 날 파격을 일삼을 필요는 없다. 중심 잡고 위안 주는 게 본질이다. 그래도 딱딱해 보이던 교계가 말랑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대선이 이제 한 달 남았다. 정치판엔 종교인 자처하며 잇속만 노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올 초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은 “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산천초목은 솟아오른다”고 했다. 다음 정부는 막 솟아나는 청년들을 ‘표’로만 보지 않길 바라본다.
정양환 문화부장 ray@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