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물이 합쳐져 바다가 되는 곳… 산신각에 오르니 열수가 펼쳐졌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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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수종사의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풍경. 저멀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수종사의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풍경. 저멀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다 같은 풍경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몸을 섞고 휘돌아가는 곳. 두물머리(양수리). 초록빛 나무들은 섬처럼 떠 있고, 대교가 큰 강을 가로지른다. 남양주에서 태어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한강을 잊지 못했다. 다산초당 천일각에서 섬이 둥둥 떠 있는 남해를 바라보면서 한강과 비슷한 풍경이라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 ‘열수(洌水)’로 돌아오다

경기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水鍾寺)는 밀려오는 한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수종사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산신각이 뷰포인트다. 산신각에 서면 대웅전 너머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원하게 탁 트인 풍경에 수종사는 수도권 사찰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명승(命勝·제109호)으로 지정됐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지점인 양평 두물머리의 새벽풍경. 김준태 작가 제공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지점인 양평 두물머리의 새벽풍경. 김준태 작가 제공
수종사는 다산이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놀러 오기도 하고, 형제들과 함께 책을 지게에 지고 올라와 과거시험 공부를 하기도 했던 곳. 과거에서 세 번 낙방 후 네 번째에 급제하자 수종사에서 잔치를 벌이기도 했던 인연이 있다.

“강진의 유배지에서 바라본 바다가 남양주의 한강 풍경과 비슷하다고 친구인 초의선사에게 늘 말했다고 해요. 18년 만에 해배돼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초의선사(1786∼1866)가 해남에서 죽로차(竹露茶)를 가지고 함께 올라와 수종사에 머물렀습니다.”

동산(東山) 주지스님은 “수종사가 ‘선다(禪茶)의 도량’이 된 것은 다산과 초의선사와의 깊은 인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수종사에는 ‘삼정헌(三鼎軒)’이란 경내 다실이 있다. 전망 좋은 방에서 무료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마재마을은 나주 정씨의 집성촌이었다. 다산 유적지는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이 유명하지만, 정약용이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고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팔당 호숫가의 마재는 정약용의 인간적 면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엔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 실학박물관, 다산생태공원, 다산정원 등 ‘정약용 유적지’가 조성돼 있다. 정약용 생가의 사랑채에는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가 걸려 있다. 1800년 (정조 24)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다산은 고향 마재로 돌아와 형제들과 경전을 공부하며 걸었던 편액이다. 이곳의 툇마루에 앉아보니 한옥의 처마가 깊은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다. 그러나 ‘여유당’은 ‘여유로운 집’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노자도덕경 15장에 나오는 “조심하는 것이 겨울에 얼어 있는 개천을 건너는 듯이 하고(與), 경계하는 것이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猶)”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당시 살얼음판 같은 정치 상황 속에서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경계의 말이다. 서학(西學)을 받아들여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에 온 집안 사람들이 참수당하고, 유배당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당호다.

여유당 뒷동산에는 정약용의 무덤이 있다. 다산의 무덤에서도 한강의 풍경이 넓게 펼쳐진다. 그가 직접 쓴 ‘자찬묘비명(自撰墓碑銘)’에는 “여기는 열수(洌水) 정약용의 묘다”라고 시작한다. 정약용은 말년에 자신의 호를 ‘열수(한강의 옛 이름)’라고 지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는 한양으로 들어오는 지방 물산의 집산지였다. 다산은 “우리나라에는 수레가 없고 망아지가 달리는 풍속이 없다. 모든 일용 백물을 운반하는 방법이 배 아니면 이고 나르는 두 가지뿐이니, 배의 쓰임이 매우 긴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조가 화성을 찾을 때 한강을 건너는 ‘배다리’의 설계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평생 한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이용할 줄 알았던 선각자였다. 정약용 유적지에 있는 실학박물관은 가장 큰 회의실 이름을 ‘열수홀’로 지어 정약용을 기리고 있다.

남양주 마재성지의 한옥성당과 한복을 입은 성모상.

남양주 마재성지의 한옥성당과 한복을 입은 성모상.
실학박물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성가정(聖家庭) 마재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요람 중 하나다. 정약용의 형제들은 18세기 후반부터 집안에 보관돼 있던 한역서학서를 읽고 있었는데, 그 중 정약전은 1779년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에 참석해 이벽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듣고 신앙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한국 천주교가 불교의 사찰에서 처음 태동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마재성지에는 벽돌로 지어진 크고 웅장한 건물 대신 나무로 지은 소박한 성당이 있다. 앞마당에는 한복을 입은 성모상이, 성전 안에는 한복을 입은 십자가 예수상이 있다. 천주교가 조선에 처음 전해졌을 때 한옥에서 예배를 보았다는 걸 떠올리면 한옥 성전과 한복 입은 예수님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마재성지는 천주교를 받아들인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 4형제와 함께 대를 이어 순교한 정약종 가족을 기리는 성지다.

정약용 형제들과 천주교의 인연은 너무 깊었다. 초기 천주교회사의 주요 인물들과 가족관계로 이어진다. 맏형인 정약현의 처남은 한국천주교회의 성조로 불리는 이벽이고, 사위는 ‘백서’로 유명한 황사영이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인 이승훈은 정약용의 누이와 결혼했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은 정약용의 외사촌이다. 특히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은 본인과 부인(유선임), 아들(정하상), 딸(정정혜)이 모두 참수돼 순교했다.

마재성지의 지정태 주임신부는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은 정식 서품을 받은 신부가 없던 시절 ‘가성직 제도’로 임명된 숨겨진 열 명의 신부 중 한 명이었다”고 소개했다.

● 실학박물관에서 만난 추사

남양주 실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사, 다시’ 전시회.

남양주 실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사, 다시’ 전시회.
정약용 생가 인근에 있는 실학박물관에는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학문적 업적과 생애가 총망라돼 있다. 서울에 있는 어떤 고궁이나 박물관보다 현재에 더욱 절실히 다가오는 실용적 학문의 가르침을 얻어갈 수 있는 전시가 많다. 현재는 특별전시회로 조선시대 서체의 혁신을 이뤘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를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한 ‘추사, 다시’ 전시회(10월26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화요’ ‘참이슬’ 등을 쓴 한글 서예가인 강병인은 추사의 세한도에 담긴 사유를 바탕으로 한글 ‘솔’ 자를 세종의 한글 창제 원리에 맞춰 구조를 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일민미술관의 ‘히스테리아’ 전시회에 참가했던 레터링 디자이너 김현진은 추사의 ‘유희삼매(遊戱三昧)’와 ‘괴(怪)’를 재해석한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추사 글씨의 독창성과 개성을 뜻하는 ‘괴’와 ‘졸(拙)’의 미학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DDBBMM’은 고무도장 낙관을 이용해 전각에도 조예가 깊었던 추사를 기린다. 김정희의 여러 작품에서 필획을 추출해 고무도장으로 제작해 시, 글씨, 그림, 도장이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들었다. 북디자이너 함지은은 추사의 작품 ‘사야(史野)’를 한 권의 책으로 디자인해 엮어냈고, 디자이너 양장점은 추사의 ‘서화동원(書畵同源)’ 정신을 ‘자형동원(字形同源)’으로 재해석한다. 현대의 활자 디자인이 단순하게 평면에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나 조형물처럼 입체적으로 지어지는 구조물이라는 생각이다.

실학박물관 앞에는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다산생태공원이 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서 ‘물멍’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도 많다. 김필국 실학박물관 관장은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였지만 불교와 천주교와의 인연도 깊다”며 “남양주 마재 여행은 다산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북해도의 시크릿가든을 찾아서
한진관광이 동아일보 김선미 기자와 함께 하는 ‘힐링 가드닝 북해도(홋카이도) 여행’을 선보였다. 8월8일부터 12일까지 4박 5일간 단 한 차례 진행된다. 동아일보에 ‘시크릿가든’을 연재 중인 김 기자가 동행해 정원 해설을 제공한다.

북해도 최대 규모의 숲 ‘토카치 천년의 숲’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영국식 정원 ‘시치쿠 가든’, 다양한 주제로 정원이 가꿔진 ‘우에노 팜’. 여러 빛깔 장미가 만발한 ‘로이즈 로즈 가든’, 2만여 종의 꽃이 사계절 피어나는 ‘카제노 가든’ 등 북해도를 대표하는 정원들을 만난다. ‘롯카노모리’, ‘토카치힐즈’ 등 북방 자연환경을 살린 초지 정원들도 방문한다.

북해도의 사진 명소인 ‘팜 도미타’에서 라벤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후라노의 잼 공방과 치즈 공방을 들러 시식과 체험을 하는 일정은 지쳤던 일상에 동화적 감성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닝구르 테라스’에서는 자작나무 숲속 통나무집 공방에서 수공예품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다.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 ‘토카치카와 온천 호텔’, ‘오모7 아사히카와’ 등 온천과 자연이 어우러진 특급 숙소들이 여행의 품격을 높인다.

이번 여행에서는 ‘정원의 위로’(민음사) 저자인 김 기자의 정원 인문학 강의도 마련돼 있다. 한진관광 측은 “정원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분들이 식물의 생명력과 정원을 가꾼 사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깊이 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여행은 대한항공 전세기로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며 선착순 모집이다. 한진관광 홈페이지와 고객센터(1566-1155)를 통해 문의 및 예약할 수 있다.

팜 도미타. 한진관광 제공

팜 도미타. 한진관광 제공

글·사진 남양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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