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 청어, 산나물…철마다 식재료 사냥, 메주 도넛·흑마늘 퓌레로 '한식의 재발견'

3 weeks ago 11

(왼쪽부터) 배추 뿌리로 연꽃 모양을 만든 ‘집중’, 메주 도넛(‘겉.바.속.쫀(득)' 찹쌀 도넛 안에 캐러멜라이즈드 크림을 가득 채우고, 청국장 가루로 장식한 메뉴, 한우와 토종 쌀밥.

(왼쪽부터) 배추 뿌리로 연꽃 모양을 만든 ‘집중’, 메주 도넛(‘겉.바.속.쫀(득)' 찹쌀 도넛 안에 캐러멜라이즈드 크림을 가득 채우고, 청국장 가루로 장식한 메뉴, 한우와 토종 쌀밥.

전 세계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작년 기준 약 3650곳이다. 1스타 레스토랑은 약 3000곳, 2스타는 약 500곳, 3스타는 약 150곳이다. 레스토랑을 미식 문화의 이정표로 만들기 위해 매년 셰프들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음식과 철학을 접시에 담아낸다.

지난 2월 한국 레스토랑들도 한 차례 별들의 전쟁을 치렀다. 올해 미쉐린 가이드에선 주목할 만한 푸른 눈의 한식 셰프가 있다. ‘한국 음식 발효 대사’로 불리는 호주 출신 조지프 리저우드 셰프다. 그가 2018년 처음 문을 연 ‘에빗(EVETT)’은 올해 미쉐린 2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서울 역삼동에서 시작해 지금은 청담동에 둥지를 텄다.

에빗을 최근 방문했을 때 리저우드 셰프는 점심 시간대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두 눈은 두릅, 청어, 산나물, 된장 등 한식 재료를 얘기하며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의 눈망울로 변했다. 전국 방방곡곡 명인을 만나고 직접 재료를 공수하러 돌아다닌 열정이 묻어났다. 리저우드 셰프와 함께 그의 음식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야니스 페랄 소믈리에도 만났다.

에빗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이진섭

에빗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이진섭

▷에빗의 미쉐린 2스타 승격 이후 어떻게 지냈나요.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예약이 많아지고, 미쉐린 2스타 발표 후에는 3개월 이상 예약이 꽉 찼네요. 미쉐린 2스타 발표 순간에는 ‘무엇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청담동으로 레스토랑을 옮기고 난 뒤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전에는 공간이 협소해서 조금 힘들었어요. 지금은 공간이 넓어져서 한국 재료와 음식을 다양하게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처음 레스토랑을 열 때부터 한국 재료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거든요. 물론 에빗을 경험하는 고객이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됐고요.”

레스토랑 ‘에빗’ 내부 /ⓒ이진섭

레스토랑 ‘에빗’ 내부 /ⓒ이진섭

▷공간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운치 있는 대감집 정자 같은 느낌이 있고, 주방을 장식한 벼와 메주도 인상적이네요.

“에빗의 콘셉트는 ‘한국 식재료만 사용해 외국인 시각으로 풀어낸 한식’이에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고급 요리는 거의 트러플과 한식의 조합, 캐비아와 한식의 조합이었죠. 한국 음식은 재료가 풍부하고 특별해서 굳이 트러플이나 캐비아를 사용하지 않아도 맛과 멋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몫은 결국 한국 식재료를 다른 방식과 차원으로 선보이는 거예요.”

▷한국에 오기 전 영국의 ‘키친 8’ ‘레드버리’ ‘톰 에이킨스’, 미국의 ‘더 프렌치 런드리’에 있었습니다.

“처음 호주에서 일할 때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는데 호주는 1주일에 30시간 정도밖에 일할 수 없어 배우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미쉐린 레스토랑은 셰프를 밀어붙이는 강도가 훨씬 셌는데, 당시 저는 1주일에 100시간 이상 근무했습니다. 그때 성장한 것 같아요. 파스타와 미쉐린 코스를 구성하는 법을 배우고, 레스토랑을 옮기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랬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일하는 경험을 축적해 나가며,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세계를 돌아다니며 팝업 레스토랑을 연 경험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2016년 고객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해 ‘세상에서 가장 팝업 레스토랑’을 연 경험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들과 같이 산에 오르고 매일 요리하고 식사하면서 셰프로서 가치뿐만 아니라 유대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산지대이고 산소도 부족해 신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극한 상황에서 요리하며 ‘이런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시간이었습니다.”

▷에빗의 이전 메뉴에 개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메뉴에서 사라졌네요.

“개미는 고객들이 흥미를 느끼는 메뉴였지만, 한식 재료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코스가 개미에 가려지는 것 같아 과감히 없앴습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가 메뉴에 더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코스 중에 배추 뿌리로 연꽃 모양을 만든 ‘집중’이라는 메뉴, 흑마늘 퓌레와 멸치, 달고나 칩을 더해 짭짤하고 고소한 맛을 살린 ‘메주 도넛’, 잘 차려진 한상이 응축된 ‘한우와 토종 쌀밥’이 인상적입니다. 메뉴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농부와 한식 명인을 찾아뵙기도 하고, 식재료를 공수하러 다니면서 영감을 얻어요. 제가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한국에 온 이후부터 한 번도 변함없던 원칙입니다.”

▷봄에는 두릅과 산나물이 좋고 여름에 과일, 가을에는 능이가 맛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식을 향한 열정은 언제 생겼나요.

“호주와 영국에서 지낼 때 슈퍼마켓에 가면 바나나, 오렌지, 사과가 항상 있었어요. 1년 내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국 슈퍼마켓은 채소, 과일이 계절마다 다르죠. 한국 음식의 잠재성이 바로 재료에 있다고 봅니다. 산, 들, 강, 바다 등 자연과 맞닿아 있는 나라도 드물고요.”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음식뿐만 아니라 와인과 음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에빗만의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함께 일하는 셰프들이 가장 특별해요. 에빗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레스토랑을 떠나도 정말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손님뿐 아니라 함께 근무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잘 알죠. 한식에 와인을 페어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저희는 페랄 소믈리에와 와이너리에 와인 2500여 병이 있습니다. 세상 어느 미쉐린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을 만큼 질 좋은 와인을 갖췄죠.”

에빗의 소믈리에 야니스 페럴(왼쪽)과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이진섭

에빗의 소믈리에 야니스 페럴(왼쪽)과 오너 셰프 조셉 리저우드 /©이진섭

▷페랄 소믈리에는 어떤 사람인가요.

“프랑스 출신인 페랄 소믈리에는 일곱 살부터 와인을 배웠습니다. 그냥 가정 교육 같은 거죠. 부모님이 주는 샤도네이, 피노누아 열매를 직접 맛보고, 궁금하면 마셔보면서요. 에빗의 음식이 저라면 음료는 페랄이겠네요. 저희는 환상의 마리아주처럼 호흡이 잘 맞아요.”

▷셰프로 살면서 보람찬 순간은 언제인가요.

“일하는 것만으로도 보람차고 행복합니다. 2019년 10월 23일 에빗이 미쉐린 1스타를 얻고 석 달 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어요. 이제는 음식으로 행복해하는 손님들만 봐도 행복합니다. 제 옆에 페랄처럼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도 큰 자부심이죠.”

▷10년 후 리저우드 셰프가 궁금한데요.

“요리는 저에게 일로써 재미를 주고 누군가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줘요.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저는 속으로 ‘창조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한식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굴하고 문화 현상을 만들어가는 에빗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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