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최저임금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인상된다.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을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려는 정부 방침에 따라서다. 임금 상승은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이르면 10월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 중앙최저임금심의회는 이날 2025년도 최저임금 기준을 전국 평균 시급 1118엔으로 결정했다. 현재 1055엔보다 63엔 올리는 것으로, 금액 기준으로도 인상률(6.0%) 측면에서도 사상 최대 폭 인상이다. 인상률은 현행 시급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계산한 2002년 이후 최대다.
일본 정부는 2020년대에 최저임금을 전국 평균 1500엔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날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목표를 고려하며 데이터에 근거해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목표 달성에 필요한 연평균 인상률(7.3%)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에서는 임금이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5월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직원 5명 이상 업체 근로자 1인당 평균 명목임금은 월 30만141엔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0% 늘었다. 그러나 물가 변동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1년 전보다 2.9% 줄어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실질임금 감소 폭은 2023년 9월 후 최대였다.
일본은 지역마다 최저임금이 다르다. 올해는 47개 지방자치단체를 경제 상황에 따라 A, B, C 등 3개 등급으로 구분했다. 도쿄, 오사카 등 A등급 6곳과 홋카이도, 히로시마 등 B등급 28곳은 63엔 인상이 기준이다.
아키타, 오키나와 등 C등급 13곳은 64엔 인상을 기준으로 잡았다. 하위 등급 인상액이 상위 등급을 웃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역 간 격차를 시정하려는 목적이다. 기준대로 인상되면 모든 지자체의 최저임금이 1000엔을 넘게 된다. 인상된 최저임금은 10월부터 순차 적용된다.
올해 일본 춘계 노사 협상에서 임금 인상률은 평균 5.25%였다.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임금 인상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는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조건 중 하나다. 일본은행은 경제·물가 정세에 따라 계속 기준금리를 인상해 금융 완화 정도를 조절할 방침이다. 시장에선 이르면 10월 인상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새 최저임금은 이날 환율을 적용하면 내년 한국 최저임금인 시간당 1만320원보다 180원가량 많다. 한국은 내년 최저임금을 1만30원에서 290원(2.9%) 올리기로 했다. 한국은 2023년부터 최저임금이 일본보다 많았지만, 일본이 올해 더 크게 올리면서 한국을 다시 앞서게 됐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