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가 현대의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 중 하나는 영화음악이다. 할리우드 볼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지낸 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낭만주의 오케스트라의 음악어법이 코른골트를 비롯한 작곡가들에 의해 영화음악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현대 대중이 말러를 비롯한 후기낭만주의 음악을 친근하게 느끼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했다.
지난 18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이 수석객원지휘자 윌슨 응 지휘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친 ‘클래식 인 무비’ 콘서트는 바그너에서 차이콥스키, 폴 뒤카, 피에트로 마스카니에 이르는 후기낭만주의 작곡가뿐 아니라 ‘심포닉 재즈’로 미국 대중음악과 오케스트라의 연결고리를 마련한 조지 거슈윈, 현대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첫 곡인 거슈윈의 ‘걸 크레이지’ 서곡부터 이날 연주의 특징은 비교적 명확히 잡혀 나갔다. 각 파트가 서로 귀 기울여 듣는 단정한 앙상블이 확고한 인상을 줬다. 현악이 리드하는 전체적 밸런스는 따뜻하고 풍성한 음의 색상으로 다가왔다. 트럼펫과 타악기가 증강된 2관 편성이었지만 이보다 큰 편성의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모리코네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오보에의 나무랄 데 없는 솔로도 좋았지만 현의 따뜻한 음색이 멋진 배경을 마련해줬다.
거슈윈 ‘파리의 미국인’에서 트럼펫 솔로는 등장하면서부터 도회의 석양과 같은 희부연 느낌을 잘 살려냈다. 후반부 알레그로로 벨(나팔)을 연 트럼펫과 약음기를 낀 트럼펫이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부분에서 고음역에 미세한 어긋남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곡이 요구하는 트럼펫의 까다로운 악구들을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연주자들은 넉넉하게 구현했다.
전체적으로 이 콘서트에서 윌슨 응의 리드는 말끔하게 꾸려내 묶은 선물 상자를 연상하게 했다. 필요한 부분에서는 불길을 확 지펴 올리지만 악보가 요구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석적인 윌슨 응의 곡 해석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부분은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였다. 흥미롭고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산만한 느낌이 있는 이 곡에서는 적절한 과잉이나 ‘폭주’가 실려도 좋을 듯했다.
차이콥스키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는 예상 밖의 선택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같이 더 열렬하고 인기 있는 선택지가 있는데 왜 이 곡이었을까. 궁금증은 곡이 시작되는 순간 풀렸다. 윌슨 응에겐 이 곡에 대한 분명한 설계가 있었으며 아마도 그는 개인적으로 이 곡을 좋아할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여러 음색이 경쟁하는 목관부 전체가 화음의 색깔을 결정하도록 할 때가 많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윌슨 응의 음량 배분은 완벽했다.
백수련 악장의 솔로가 활약한 모리코네 ‘시네마 천국’ 중 ‘사랑의 주제’로 전체 프로그램을 마친 뒤 윌슨 응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앙코르로 바흐 토카타와 푸가 D단조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편곡 버전을 내놓았다. 스토코프스키가 돌아와 구름 위 신들의 세계를 재현한 듯한 아쉬움 없는 마무리였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