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문제를 놓고 '치킨게임'을 벌여 온 미국과 중국이 이번 주말 스위스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미중 협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몇 번 만난다고 해서 빅딜이 성사되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지금처럼 자존심만 세우면서 평행선을 달리던 상황은 개선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시장의 전망입니다.
미중 협상은 오는 10일부터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립니다. 미국 측에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하고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중국 측에서는 허리펑 중국 국무부 부총리가 각각 등판하는데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시진핑 주석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 각국 경제 수장들끼리 만나는 겁니다. 이건 사실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은 아닌데요. 정상회담을 선호하고 또 시주석에게 수 차례 전화하라고 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물꼬를 트기 위해서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쪽으로 가는 것에 동의한 듯한 모양새입니다.
양국의 발표 내용을 보면 조금 톤이 다릅니다. 미국 재무부하고 USTR의 발표문은 관세 협상이라든가 하는 말을 자세히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하고 만난다 정도만 언급을 했고 구체적으로 누구와 만나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도 안 했습니다. 반면에 중국 상무부 측은 어제 굉장히 공격적인 전투 태세를 보여줬는데요. “미국이 자발적으로 중국에 정보를 제공하면서 대화하기를 희망해서 만나는 것”이라면서 “협상이라는 간판을 달고 협박과 공갈을 한다면 중국은 절대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이 서로 겉으로는 자존심을 세우지만 계속 이렇게 125%나 145% 수준의 관세를 주고받으며 하염없이 버티기는 쉽지 않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당장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고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예상에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도 수출길이 확 끊기면 그렇지 않아도 허약해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서로 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물밑에서는 접촉이 있었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겉으로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오늘도 주중 미국대사 취임 선서식에서 중국에 대한 145% 관세를 낮춰서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또 스위스 협상에서 뭘 얻기를 바라느냐는 질문 에는 “펜타닐 유입을 막아야 한다”면서 “시 주석이 그 점을 이해했고 이전에 합의가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먼저 낮출 수는 없다는 태도를 다시 한 번 유지한 겁니다. 또 미국이 스위스 회동을 제안했다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서 “그들이 기록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면서 미국은 먼저 제안한 적 없다고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협상의 수준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고, 중국의 덩치는 과거에 비해 커진 것도 타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하지만 일단 스위스에서 양측이 만나는 만큼, 적절한 방식과 시기에 대한 조율이 이뤄진다면 100%가 넘는 초고세율은 조금 더 현실적인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많습니다. 기업들로서는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