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런 죽음을 뒤집으면 무엇이 될까?
당연히 답은 ‘삶’이다. 혹은 ‘영생’이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죽음을 ‘음악적으로’ 뒤집으면 무엇이 나올까. 그 답은 ‘달콤한 쓸쓸함’이나 ‘달콤한 고독감’, 또는 그와 비슷한 무엇이 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디에스 이레(Dies Irae)’와 ‘인버전(inversion·전위·轉位)’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중요하다.
디에스 이레는 중세 가톨릭성가에 나오는 시퀀스(속창·미사 중 알렐루야 다음에 부르는 노래)다. 가사는 이렇다.
진노의 날, 그 날 오면세상은 재 되어 스러지리라.
다윗과 시빌라가 증언한 것과 같이.
신의 분노에 의한 인간의 재앙을 그린 이 가사는 가톨릭의 레퀴엠 미사(장례 미사)에 사용되었고 모차르트와 베르디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가 자신의 ‘레퀴엠’에서 이 가사에 곡을 붙였다. 베르디가 작곡한 ‘디에스 이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러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불운한 상황을 맞을 때마다 일종의 밈처럼 동반되는 선율로도 친숙하다.
그런데 이 가사에 붙인 가장 최초의 선율, 또는 원형적인 선율은 따로 있다. 서양 음악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디에스 이레’다. 그 선율은 다음과 같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디에스 이레’]
악보에서는 계이름상 ‘파-미-파-레-미-도-레’로 진행되지만, 첫 행의 마지막 음을 단음계의 주음인 ‘라’로 해석해서 ‘도-시-도-라-시-솔-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에도 음 사이의 간격은 동일하다.
이 그레고리오 성가의 ‘디에스 이레’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작품 속에 인용한 선율로도 유명하다. 본래의 가사 뜻은 신이 인류에게 내리는 재앙을 나타내지만, 대부분의 작곡가는 이를 신이 인간 각자에게 내리는 징벌 즉 ‘죽음’으로 해석했다.
베를리오즈는 ‘환상 교향곡’ 마지막 악장 ‘마녀들의 밤의 안식일’에서 이 선율을 인용해 괴기스럽고 음산한 환각을 표현했다. 리스트는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 ‘죽음의 무도’에서 이 선율을 기본 주제로 사용했다. 생상스 ‘죽음의 무도’, 차이콥스키 교향곡 ‘만프레드’ 4악장,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1악장 등에도 이 선율이 등장한다.
이 ‘디에스 이레’ 선율을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을 넘어 일생 이 주제가 주는 강박에서 풀려나지 못한 작곡가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 1악장과 4악장, 교향곡 2번 2악장, 교향곡 3번 3악장, 교향시 ‘죽음의 섬’, 관현악곡 ‘교향적 무곡’ 3악장, 합창 교향곡 ‘종’,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피아노 소나타 1번 3악장 등 수많은 작품에 이 선율을 인용 또는 삽입했다. 이 작품들 외 여러 작품에도 이 선율이 해체되거나 숨겨진 상태로 들어있다는 분석이 늘 제기된다.
왜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죽음의 선율’에 집착했을까. 불행한 가족사에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세 살 많았던 누나 소피아가 열세 살 때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도박에 집착했던 남편이 가족을 돌보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별거를 택했다.
2년 뒤엔 첫째 누나 옐레나가 빈혈로 세상을 등졌다. 두 살 많던 바로 손위 형 블라디미르도 스물여섯에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든 죽음이 데려갈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자신은 1943년 70세로 타계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기준으로는 천수를 누린 셈이다.
이제 인버전(전위)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인버전이란 음계의 아래 위를 뒤집는 것을 말한다. 바흐 ‘2성 인벤션’에 나오는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뒤집는 각 음의 간격은 기본적으로 반음 사이까지 동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악보 윗줄의 ‘도레미파레미도’는 전위하면 ‘라솔파미솔파라’나 ‘미레도시레도미’가 되어야지 ‘도시라솔시라도’ 등이 될 수는 없다. 음계상 미-파나 시-도 같은 반음 관계까지 대칭이 되도록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도 이런 인버전 기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중 제18변주를 인버전으로 처리했다. 이 곡의 주제는 파가니니의 무반주 바이올린 카프리스 24번에서 따왔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주제]
곡 서두의 주제는 A단조의 ‘라-도-시-라-미’로 진행된다. 18변주의 선율은 D플랫 장조의 ‘솔-미-파-솔-도’다. 반음 관계까지 아래 위가 바뀐 인버전이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제 18변주]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나는 가설을 하나 세운 뒤 증명을 해보기로 했다. 가설은 다음과 같다.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디에스 이레’ 선율에 집착했고,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로 인버전(전위) 기법도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이 ‘디에스 이레’의 선율도 자신의 작품 어딘가에 전위된 형태로 인용하지 않았을까?
‘디에스 이레’의 ‘파-미-파-레-미-도-레’를 인버전하면 ‘미-파-미-솔-파-라-솔’또는 ‘시-도-시-레-도-미-레-가’ 된다.
이 인버전한 음형을 상기하는 순간, 바로 떠오른 선율이 있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 제2주제의 후반부다. 피아노에 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같은 음형을 반복한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제2주제 후반부]
이 부분은 ‘미-파-미-솔-파’의 진행을 가진다. 물론 ‘디에스 이레’의 첫 행인 ‘미-파-미-솔-파-라-솔’의 일곱 음 진행에 미치지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다섯 음의 계이름상 진행이 일치할 확률도 (음계상의 반음 처리를 제외하고 가정하더라도) 7분의 1의 5제곱분의 1, 즉 1만 6,807의 1에 불과하다. 누구도 자신이 아는 멜로디 중에 ‘미-파-미-솔-파’의 진행이 나오는 부분을 대라고 하면 선뜻 대지 못할 것이다.
이 멜로디 또는 음형은 이 협주곡 3악장의 제2주제에도 확대 변형된 형태로 등장한다. 이 부분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 제2주제]
라흐마니노프는 ‘디에스 이레’를 전위(인버전)하여 이 음형을 얻었을까? 단지 우연일 뿐일까? 그에게 이 음형 또는 선율이 ‘디에스 이레’의 인버전 음형과 닮았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렇다, 제대로 파악했군’이라고 답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감상적 선율의 대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작곡 기법, 특히 대위법에도 능통했던 기능적 명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

4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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