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이란이 유럽 전역에서 미성년자를 첩보·파괴 공작에 동원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와 이란은 온라인상에서 청소년을 모집해 국가 차원의 작전에 활용하고 있다. 텔레그램과 디스코드 등 온라인 게임 플랫폼을 통해 접근한 뒤 금전적 보상을 미끼로 정찰·방화 활동을 지시하는 식이다.
실제 지난해 네덜란드에서는 17세 소년이 러시아 요원에게 포섭돼 정부 기관을 상대로 감청 활동을 벌인 혐의로 체포됐다. 이 소년은 와이파이 신호를 가로채는 장비를 사용해 헤이그 소재 기관들의 통신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수법은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등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 협력 혐의로 체포된 인원 가운데 21%가 청소년인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는 방공 시스템 위치를 촬영해 러시아 측에 전달했고, 군 차량 방화나 선전 활동에도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FT는 “미성년자를 표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양상”이라며 “유럽 내 반체제 이란인들을 겨냥한 작전을 확대하려던 이란도 곧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러시아가 전쟁 장기화 이후 성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운 청소년층으로 모집 대상을 확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 경우 작전이 실패하거나 가담자가 체포되더라도 배후 국가와의 연결고리를 입증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모집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러시아 측 모집책들은 온라인 게임의 ‘미션’이나 ‘퀘스트’ 형식을 차용해 청소년들이 정찰과 정보수집, 방화 등 실제 임무를 수행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기 게임의 채팅 기능을 통해 최초 접촉이 이뤄진 뒤 텔레그램으로 대화가 옮겨지는 사례가 확인됐다. 한 서방 군 관계자는 이를 두고 “포켓몬 고와 비슷하지만 목표물이 방공 시스템인 셈”이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라트비아에서는 친러 선전물 배포와 우크라이나계 주민 대상 공격에 젊은이들이 동원됐다. 영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잇따랐다. 런던경찰청은 대테러 수사 과정에서 체포되는 인원 가운데 17세 이하 비중이 20% 수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학교, 지역사회 차원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조직과 테러단체, 적대국 정보기관 모두 젊은 세대가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서 잠재적 협력자를 찾고 있다”며 “많은 부모가 자녀가 게임 플랫폼에서 친구들과만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상황은 훨씬 복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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