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은 억울해”…아산병원 나와 마이크 잡은 ‘저속노화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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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정희원 교수, 7월 1일 첫방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 진행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내 몸의 속도는 내가 결정”
“삼각 김밥 먹고 소주를 마실 돈이면, 저속노화 간장 계란밥이 나아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 사진 ㅣMBC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 사진 ㅣMBC

“대학병원 3분 진료에선 할 수 없던 말들을 더 큰 스피커를 통해, 수 백만명에게 이야기 할 겁니다”

한국 최고의 병원이라고 불리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진료실을 떠나 오는 7월 1일부터는 MBC 표준FM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오전 11시 5분 방송)로 청취자들을 만난다.

‘욜로’ 대신 ‘저속노화’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데에는 정 교수의 영향이 컸다.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저속노화좌’ 정희원 교수를 지난 25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만났다.

—국내 최고의 병원을 퇴사해 라디오로 오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일각에선 퇴사가 정계 진출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요.

“지난 3월 말 즈음. 사직서를 낼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MBC에서 ‘라디오를 함께 해보자’는 연락이 왔어요. 라디오 DJ가 장래희망이었던 적도 있었고요. 라디오를 워낙 좋아해서 흔쾌히 오케이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방송반을 하기도 했고요. 유튜브에서도 좋은 음향을 고집하는 등 애정이 있었는데, 출연 제의를 받으니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계 진출은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웃음)”

—라디오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걸까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20대 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요. 그런데 5060은 잘 안들어오더라고요.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싶어서 큰 확성기가 필요했습니다. 라디오는 아무래도 연배가 있는 분들이 많이 들으시잖아요? 수백만명에게 다가갈 스피커를 이용해 이야기할 수 있겠단 생각이었어요”

—매체 중에는 라디오 말고 TV도 있습니다. 영향력을 키우기엔 TV 매체가 더 나을 수도 있는데요.

“TV에는 이른바 ‘쇼닥터’가 많아요. 아무래도 제작비가 라디오보다 훨씬 많이 드니까 필연적으로 협찬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결국엔 영양제를 홍보하게 되고, 상업화 됩니다. 그런 게 싫었어요. 사실 저는 내과 의사입니다. 환자 사례를 소개하고 단기간에 환골탈태시키는 그런 방식의 사례 소개는 솔직히 못합니다. 그런 한계가 있어요. 반면 라디오는 방송 송출 시간만 지키면, 그 안에서는 제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요.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해 그런 경험을 해보니 ‘의학적인 가이드 라인을, 가장 올바른 정보 전달을 할 스피커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희원 교수가 “진즉 할 걸 그랬다”며 라디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 MBC

정희원 교수가 “진즉 할 걸 그랬다”며 라디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 MBC

—매일 평일 오전 11시 5분부터 1시간 동안 방송이 진행됩니다. 매일 방송을 한다는 결심이 쉽진 않았을텐데요.

“아무래도 라디오를 하는 데는 시간 투자나 헌신이 필요하긴 합니다. 전례 없는 프로그램이라 주제 선정부터 어떤 말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도 해야하고요. 품이 많이 들고, 에너지도 많이 쓰일테죠. 병원 진료실에서 외래 진료를 보는 대신에 제 본업이 된 느낌입니다. ‘라디오 진료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간 병원에서 3분 진료로 하고픈 말, 전달해야할 말을 다 못했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외래 진료실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꼭 해야했던 교육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라디오 방송이 매일 진행되는 만큼, 다루는 주제 또한 빠르게 소진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두신 이슈들이 있을까요.

“토픽 고갈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을 안합니다. 그간 제가 썼던 책이나 칼럼에 기반해 토픽을 만들고 있어요. 지금까진 힘들지 않았고, 향후 준비된 게 떨어지면 그때그때 발굴해야 하지만, 문제는 없을 겁니다. 제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라디오, 유튜브에서 다룰 토픽이 아직 수십개나 있고, 계속 쌓이고 있어요. 사건 사고나 의료계 이슈, 신약, 새로운 논문 등 다룰 이야긴 정말 많아요. 두 번의 녹음을 끝냈는데,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겠더라고요. 진즉 할 걸 그랬어요.(웃음)”

—MZ세대에게 ‘저속노화좌’로 불리시지요. 젊은 세대에겐 ‘저속노화’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장년층 이상에겐 다소 낯선 말입니다. 한 마디로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저속 노화는 결국 느리게 나이 드는 겁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지만, 내 몸이 고장나서 기능이 떨어지는 속도는 내가 결정한다는 겁니다. 내가 나를 고장내는 속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고, 노년에 아픈 기간을 최소화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희원 교수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저속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MBC

정희원 교수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저속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MBC

—현재 MZ 세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저속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슈로 만든 주역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잘 먹고 잘 사는 좋은 경험을 해보면, 저속노화적 라이프 스타일이 좋다는 걸 깨달을 수 밖에 없어요. 풀스피드 가속노화로는 누구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겁니다. 또 재미있고 힙하고 앞서가는 느낌이니 더 하고 싶단 생각을 할 거고요. 저의 작전, ‘저속노화를 디폴트 값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성공 시키고 말겁니다. 또 성공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저속노화의 성공을 자신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경제 불황 때문이죠. 가처분 소득이 부족한 가운데 저속노화 도시락을 싸서 회사에 가면 점심값 1만원을 아낄 수 있어요. 요즘 물가가 올랐지만, 도시락을 만든다면 끼니당 3~4천원이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뱃살도 들어가고, 머리도 좋아지고, 잠도 잘 자게 됩니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입니다. 삼각 김밥 먹고 소주를 마실 돈이면, 저속노화 간장 계란밥이 나아요. 정신 승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좋은 경험을 하면 좋잖아요?”

—‘저속노화’의 순기능이 또 있을까요.

“경제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앞으로 제일 비싼 건 돌봄 비용일 겁니다. 최근 한 환자 보호자가 ‘부친이 요양병원에 가야하는데 1인실은 1달 천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중환자라면 간병인이 한 달에 7백만원 즈음 받아요. 건강 수명과 실 수명의 갭이 10년 즈음 됩니다. 적어도 5년은 간병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녀들이 돌아가며 부모님의 간병비를 갹출하면 되겠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만 해도 2명 내외의 자녀들이 돈을 내거나 직접 간병을 해야 하고, 저희 세대는 자녀들이 없거나 1명일 거라 다음 세대가 우리의 간병비를 못 내줄 수도 있습니다. 노년 마지막 10년이 지금 관리 여부에 따라 힘들 수도, 빛이 날 수도 있죠. 새로운 리즈 시절이 될 수도 있어요.”

—한동안 마라탕, 탕후루 등 ‘도파민’ 터지는 음식들이 화제를 모았는데요. 최근엔 저속노화 붐 덕분인지 건강한 음식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뿌듯하실 것 같은데요.

“마라탕은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라탕이 ‘가속노화’로 묶이기엔 조금 억울한 면이 있어요. 국물은 먹지 말고, 건더기를 두부, 채소 위주로 먹게 되면 건강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근데 탕후루는…(웃음)”

—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거란 예상을 하셨나요.

“처음부터 의도한 바였습니다. 이런 영향력을 가지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OO 위원회’ 같은 곳에서 전문가로 발언권을 가지려면, 60살은 넘어야 합니다. 솔직히 ‘나라가 망해 가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은 2025년부터 아주 장기적인 침체에 빠질 겁니다. 한 사람이 간병이 필요해지면, 두 명이 필요합니다. 한 명은 누워있고, 한 명은 간병을 하며, 한 명은 그 비용을 벌어야 해요. 인구 그래프를 보면서 인구 감소에 관한 단순한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GDP에 기여할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노쇠, 치매를 예방해야 해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유효 인구를 유지해야 합니다. 계속 말해왔는데 아무도 안듣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해도 모두가 주목할 수 있도록 나서고 싶었어요”

정희원 교수는 ‘마라탕’은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과 달리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MBC

정희원 교수는 ‘마라탕’은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과 달리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MBC

—왜 국민 건강과 식습관 변화에 직접 나서게 되셨나요

“미디어를 통한 몇몇 사람들의 영향으로 국민들이 먹는 음식이 급격하게 달아졌습니다. 제가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사람들이 ‘빨간약’을 먹게 만들고 싶어요. 올바른 삶의 방식이 콜라를 마시고, 설탕이 가득한 음식을 먹으며 도파민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게 욜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고 싶습니다. 개인은 인구 집단 전체의 행동을 바꿀 수 있어요. 개인이 바뀌면 사회의 건강 궤적도 바뀔 겁니다. 그에 대한 사회 실험을 하고 있는겁니다. 정책을 만들어주지 않으니, 제가 직접 도전해보겠습니다.”

-—이전에 ‘저속노화’라는 용어가 사라지길 바란다고 하셨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런 단어 조차도 필요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저속노화’를 하는 삶 자체가 디폴트값이면 좋겠어요. 오히려 용어가 남으면 저속한 의미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벌써 피부 저속노화나 이너뷰티 같은 말이나 광고에 붙어라고요.”

—건강에 관한 이슈를 다루다보면 보통 ‘영양제’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강조하시는 것은 영양 보조 제재보다는 운동이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먹는 것과 운동은 모두 뇌 건강과 직결됩니다. 둘 다 중요해요. 운동과 식습관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운동하지 않는 몸은 섭취한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축적되기 쉽습니다. 나무 역시 뿌리가 건강해야 윗부분이 건강한 것처럼, 수면, 운동, 식습관 등 모든 생활습관이 선순환을 이루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 트렌드가 확산된다면 1~2년 이내에 국민 건강과 만성질환 악화 추세가 충분히 반전될 수 있다고 봅니다”

—1~2년이라면 상당히 빠른데요.

“요즘 젊은 층을 중심으로 러닝 등 좋은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요. 과언이 아니라, 이런 추세라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등 생활습관과 밀접한 만성질환이 적어도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젊은 층에서는 빠르게 개선될 거라고 봅니다.”

정희원 교수는 저속노화를 위한 팁으로 충분한 수면과 액체 탄수화물 섭취 제한,  스트레스 관리를 꼽았다. 사진| MBC

정희원 교수는 저속노화를 위한 팁으로 충분한 수면과 액체 탄수화물 섭취 제한, 스트레스 관리를 꼽았다. 사진| MBC

—저속노화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팁이나 방법이 있을까요.

“생각을 바꾸고, 미래에 대한 관점을 전환해야 하며, 자기 돌봄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모두가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인생의 레이스에 나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빠른 팁만을 원하지만, 정작 자기 관리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본적인 마인드셋을 바꾸고, 자신을 배려해야 합니다. 일을 무작정 더 하려고 하면, 오히려 가속노화가 진행되고 자기 효능감 저하와 우울감,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반대로 절대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은요?

“첫째, 수면을 줄여가며 일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합니다. 성공을 위해 잠을 아끼는 건 오히려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이고, 생활습관을 해쳐 술, 담배, 지방,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를 높입니다. 잠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둘째, ‘액체 탄수화물’ 섭취를 피해야 합니다. 액체 형태의 당분은 혈당을 빠르게 올렸다가 급격히 떨어뜨려 기초 대사량을 떨어뜨립니다. 음료수, 달달한 커피 등은 좋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물, 커피(무가당), 차, 우유, 두유 등으로 대체하세요.”

“셋째,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해소하는 습관을 경계해야 합니다. 당 떨어지는 느낌은 당을 높였기 때문에 드는 것 입니다. 당 섭취로 해결하려는 건 피해야 합니다.”

—그간 SNS 활동을 하던 중 불쾌한 경험도 다수 경험한 걸로 압니다. 가족들에 대한 비난까지도 있었는데, 방송 전면에 나서게 되면 공격이 더 많아질 수도 있겠습니다. 각오는 하셨나요.

“한국 사회는 분노가 많은 편입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습니다만 가속노화로 인해 뇌의 편도체가 과활성화 되면서, 문해력 역시 빠르게 저하되고 있는 점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자기돌봄을 소홀히 하고, 뇌 활동을 외주화하는 경향도 한몫합니다. 이런 현상은 점차 양극화되며,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언행도 나타나죠. 저 역시 중도적인 입장에 있다보니 양측에서 공격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이들이 자기 돌봄을 실천하면 사회 전반의 분노 수준도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사람들이 조금 덜 화내고 자애로워지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과정에서 제가 희생되는 것은 게의치 않습니다.”

—정신 건강에 오은영 선생님이 계시다면, 신체 건강에는 선생님이 국민 멘토로 떠오를 것 같은데요.

“저는 멘토라는 거창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실제로 멘토링, 컨설턴트를 해봐도 도움이 되는 경우 별로 없더라고요. 언젠가 ‘저속노화’라는 말이 없어져 기본값으로 정착하고 제 존재 자체는 희미하고 흐릿하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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