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가 마치 없는 자들이 흘리는 눈물 같습니다.”
2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앞. 장대비가 이어진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듣고 딸 최윤주 씨(47)와 이곳을 찾은 최영조 씨(78)는 “빈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존경스러운 분이셨는데, 전날 서거 소식에 직장 일도 미루고 조문부터 하러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직장일도 미루고 조문”
이날 명동대성당에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는 천주교 신자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대비를 뚫고 온 50여 명의 신자는 이날 오후 3시부터 개방된 분향소에 들어서기 위해 명동대성당 지하성당 입구에서부터 길게 줄지어 조문 차례를 기다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는 이도 있었다. 조문객들은 지하성당 입구에 놓인 교황의 영정사진을 보고선 잠시 멈춰서 흐느끼고 묵념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 당시 출국 전 마지막 일정으로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추모객들은 저마다 생전 교황의 모습을 떠올리며 애도를 표했다. 황인재 씨(25)는 “최근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을 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아온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는 “며칠 전 부활절 미사에서 축도까지 해주셨는데, 갑자기 선종 소식을 들어 슬픔보다도 굉장히 놀랐다”고 말했다. 조문을 위해 명동성당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도 보였다. 벨기에에서 온 에릭(67)과 힐드(62)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두고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그는 역대 교황 중 가장 열린 마음을 지닌 분”이라고 회상했다. 또한 교황이 역사상 첫 번째 예수회 출신 교황임을 언급하며 “그는 자발적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선택했다. 굉장히 존경스럽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장례식 참석할 것”
세계 각국 정상의 추모 메시지도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로운 안식을 빈다”며 “하느님이 교황과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길 빈다”고 적었다.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행사에선 “교황은 좋은 사람이었고, 열심히 일했으며, 세상을 사랑했다”며 애도했다.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비판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바티칸에서 열리는 교황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이 성사되면 지난 1월 재집권 이후 첫 외국 방문이 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교황은 겸손한 사람이었다”며 “가장 취약하고 연약한 사람들 편에 서 있었다”고 추모했다. 프랑스는 이날 하루 에펠탑 조명을 소등하며 교황의 선종을 애도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교황 선종은 바티칸 시민과 가톨릭교도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에 큰 손실”이라고 했다. 가톨릭 신자가 국민의 절반 이상인 스페인에선 사흘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깊은 슬픔 잠긴 아르헨티나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는 깊은 애도의 물결에 잠겼다. 교황이 대주교로 재임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은 교황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와 하얀 꽃다발을 든 추모객들로 가득 찼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의 호르헤 가르시아 쿠에르바 대주교는 21일 특별미사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교황이 우리 곁을 떠났다”며 “우리가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경의는 단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한때 교황에게 “악의 축”이라는 막말을 퍼부었던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사소해 보이는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선함과 지혜를 알게 된 것은 내게 진정한 영광이었다”며 애도의 메시지를 냈다. 극단적 자유주의자인 밀레이 대통령은 빈민층 지원과 평등을 강조하는 교황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가 최근에서야 사과했다.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을 26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진행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김유진/허세민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