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배송 접어야 할 판"…중동 전쟁에 '밥상물가' 난리난 이유 [중동발 나비효과③]

2 weeks ago 11

서울 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닭고기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닭고기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스1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에서 구매하는 닭고기 가격이 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에 더해 사료 가격과 운송비까지 상승하면서 마트 공급가도 뛴 탓이다. 얼핏 생각하기엔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과 무슨 상관이겠냐 싶겠지만, 국제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널뛰면서 수입 사료 가격과 해외 운송비가 치솟자 밥상 물가 또한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하림·마니커 등 주요 닭고기 업체들은 최근 대형마트 공급가를 5~10% 인상했다. 대형마트 업계는 닭고기 소비자가격이 1년 전보다 10% 상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리점을 통해 물건을 받는 소형마트에서는 한 팩당 1000원가량 오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작 닭고기 업체들은 인상한 가격으로도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하림 관계자는 "사료는 수입에 의존하는데 환율이 오르면서 사룟값이 뛰었다"며 "여기에 국제유가까지 오르니 해외에서 가져오는 운송비도 덩달아 뛰는 이중고에 직면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 그렇게 해도 남는 게 없는 한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중동 전쟁 충격은 이제 물류·운송비를 통해 국내 장바구니 물가를 직접 밀어 올리고 있다. 비료와 사료, 포장재 등의 가격이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가운데 국제유가 급등은 화물 운송과 배송 현장의 비용 부담까지 키우고 있다. 기름값이 오르면 화물차와 배달 오토바이, 냉장·냉동 배송 차량, 택배 차량 등의 운영비가 뛰고, 이는 결국 식품과 생필품 유통단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라서다.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에서 화물차 기사들이 주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에서 화물차 기사들이 주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운송 현장에서는 이미 "더는 못 하겠다"는 푸념이 쏟아진다. 한 달 기름값이 100만원 이상 치솟으며 화물차 기사들이 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어서다. 통상 화물차 기사들은 월 소득의 3분의 1가량을 유류비로, 또 다른 3분의 1을 차량 수리·유지비로 쓰고 나머지 3분의 1을 순수익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최근 경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사들이 가져가는 몫이 빠르게 줄고 있다.

현장 체감은 더하다. 서울 강서구 한 주유소에서 만난 18년차 화물 운송 기사 황모 씨는 "1600원 하던 경유가 1900원을 넘으니 기름값이 무서워 절반만 채우고 다닌다"며 "장거리는 안 가고 싶지만 배차에 불이익을 받을까 그러지도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0년차 화물 운송 기사 문모 씨도 "이미 매출의 절반이 유류비로 나간다"며 "경유가 2000원이 되면 운임을 대폭 높이거나 운행을 멈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물연대도 지난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물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대를 촉구했다. 화물연대 최삼영 부위원장은 “25t 일반화물차 기준 한 달 유류비가 이미 100만원 이상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유가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국내 가격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한 상황"이라며 "전쟁이 장기화하면 추가 가격 상승 압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산유국 생산시설 피해가 현실화한 만큼 복구에도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종전 이후 곧바로 가격이 안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재료 값과 포장재값 상승은 소비자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업체별 재고와 계약 상황에 따라 일정한 시차가 있다. 반면 운송비 상승은 장바구니 물가에 훨씬 직접적으로 전이된다. 산지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물류센터로, 물류센터에서 마트와 편의점, 소비자 집 앞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이 모두 영향을 받는다.

특히 냉장·냉동 물류 비중이 큰 유제품과 육류, 신선식품 등은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할인 행사 축소와 무료배송 기준 상향 등이 먼저 나타난 뒤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한국중부발전 서울복합화력발전소(지하 LNG발전)에서 수증기가 나오고 있다. 사진=한경DB

서울 마포구 한국중부발전 서울복합화력발전소(지하 LNG발전)에서 수증기가 나오고 있다. 사진=한경DB

여름철 전기요금도 안심할 수 없는 변수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발전량에서 LNG 비중은 2023년 기준 26.8%로 원전(30.7%) 석탄(31.4%)에 이은 세 번째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이 LNG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3개월가량 시차가 있어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전력도 2분기(4~6월)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해 고유가 흐름이 이어질 경우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 전기요금 논란이 다시 불붙을 여지는 남아 있다. 아시아 LNG 가격 기준인 JKM(한국·일본 마커) 지수는 2월 27일 10.72달러에서 3월 19일 22.35달러로 급등했다. 현재도 20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2배로 오른 연료비는 전기요금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사료와 운송비 부담이 닭고깃값을 밀어 올리고, 물류비와 포장재 가격 상승은 장바구니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게다가 고유가 흐름이 길어져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까지 더해질 경우 전쟁 여파는 주유소와 마트 가격표, 전기료 고지서를 동시에 흔들어 소비자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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