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연극, 두 얼굴의 '지킬앤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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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4.13 14:51 수정2025.04.13 14:51

배우 고훈정이 연극 '지킬앤하이드'에서 연기하는 모습./사진=글림아티스트

배우 고훈정이 연극 '지킬앤하이드'에서 연기하는 모습./사진=글림아티스트

요즘 무대 위에는 '지킬'과 '하이드'가 각각 두 명씩 존재한다. 한 쌍은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다른 한 쌍은 용산의 뮤지컬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의 이중성을 그린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건>을 원작으로 한 두 공연이, 전혀 다른 해석으로 관객들을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연극 '지킬앤하이드'는 지난해 영국 에딘버러 초연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는 작품이다. 영국 극작가 게리 맥네어가 쓴 이 작품은 지킬 박사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의 시선을 따라, 선한 인격체인 지킬과 그의 어두운 내면에서 탄생한 하이드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단 한 명. 어터슨을 포함해 지킬, 하이드, 지킬의 집사 풀, 지킬의 지인 레니언 박사 등 다섯 명 이상의 인물을 혼자서 소화해야 한다. 배우 최정원(젠더프리 캐스팅), 고윤준, 백석광, 강기둥이 1인극을 이끌고 있다. 다음달 6일까지 공연한다.

연극은 뮤지컬보다 원작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뮤지컬 속 러브라인을 담당하는 엠마와 루시는 등장하지 않고, 대신 원작의 어둡고 기묘한 분위기가 무대를 채운다. 연극 속 하이드는 더욱 잔혹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특정한 원한이 있는 인물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어린아이까지 가차 없이 살해한다.

무대는 단출하다. 문과 의자, 책상, 옷걸이가 전부다. 하지만 이 소박한 무대는 오히려 소극장 특유의 밀도 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관객은 어터슨의 묘사를 통해 하이드의 존재를 상상해야 하며, 이로 인한 공포감은 뮤지컬 무대를 뛰어넘는다. 하이드가 어린아이를 짓밟는 장면에선 붉은 조명이, 하이드의 집 문을 비출 때는 녹색 조명이 켜지며 극적 긴장감이 고조된다.

숨 막히는 긴장감은 중간중간 배우가 객석을 향해 던지는 애드립과 농담으로 풀어진다. 결말은 원작과도, 뮤지컬과도 다르다. 뮤지컬이 지킬의 비극적 운명에 초점을 맞췄다면, 연극은 한발 더 나아간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 안의 하이드는 누구입니까?”라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사진./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사진./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드라마틱한 음악과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의 힘으로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국민 넘버(뮤지컬 속 음악)가 된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 지킬과 하이드의 숨막히는 대립을 보여주는 '대결(The confrontation)' 등을 듣기 위해 뮤지컬을 보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다음달 18일까지인 이번 공연엔 배우 홍광호, 신성록, 최재림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은 연극보다 서사가 풍성하다. 공연 시간(인터미션 포함 170분)이 연극(90분)보다 긴 만큼 두 여성 캐릭터와 얽힌 드라마가 한 축을 담당한다. 하이드가 인간 본성을 분리하는 실험에 반대하는 병원 관계자들만 살해한다는 점도 연극과 다른 지점이다. 1800여개의 메스실린더가 색색깔로 가득 채워진 지킬의 실험실도 볼거리다.

익숙한 넘버와 스펙터클한 무대의 몰입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뮤지컬 관람을 추천한다. 이미 뮤지컬을 본 관객이라면 연극을 통해 원작에 더욱 가까운 심리극의 묘미와 인간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는 것도 좋겠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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