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경질유 늘리려면 수조원 설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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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경질유 늘리려면 수조원 설비 필요

입력 : 2026.03.26 17:48

세계경제 흔드는 '검은 진주'… 석유 에너지 3가지 의문점
① 韓 중동산 중질유 의존도 70%…수입 대체재 없나
② 페트로달러 시대 저물까
중동국, 美에 군사안보 위탁
中 영향력 일부 커지겠지만
'페트로위안화' 되진 않을것
③ 재생에너지가 대안 될까
태양광·풍력 발전 확대해도
24시간 안정적 공급 힘들어
가스발전 없으면 정전 잦을것

사진설명

미국·이란 전쟁이 일으킨 원유 부족이라는 충격파는 산업을 뛰어넘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석유류는 휘발유·경유·항공유 같은 연료뿐 아니라 플라스틱과 비닐, 종량제봉투, 페트병, 각종 포장재 등 우리 일상에 쓰이는 다양한 제품의 원료다. 이뿐 아니다. 합성섬유와 타이어 같은 산업용 소재를 비롯해 페인트, 접착제, 세제, 윤활유, 전선 피복, 자동차·가전 내외장재, 화장품과 의약품 용기 등 산업 전반에도 폭넓게 쓰인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헬륨은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이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이어서, 원유 확보가 곧 국가경제와 연결된다. 중동산 에너지에 대한 의문점 몇 가지를 풀어본다.

중동산 원유 vs 미국·러시아산

한국은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로 수입된 원유 중 중동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69.9%다. 미국산 원유 수입 비중은 2021년 12.4%에서 지난해 16.4%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문제는 단순히 미국산 경질유 수입 비중을 높일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 과거부터 중동산 원유를 집중 수입하면서 정유사들이 여기에 맞춰 설비를 운영해왔다.

중동산 중질유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점도가 높고 황 성분이 많다. 미국산 경질유는 가격이 비싸고 점도가 낮다. 국내 정유업계가 저렴한 중동산 중질유를 수입해 정제하면서 설비도 여기에 최적화했다. 당장 미국산 경질유를 수입하더라도 이를 정제할 수 있는 설비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중질유 정제설비를 경질유 정제설비로 전환하려면 수조 원대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산 우랄유가 중동산 원유의 대체재로 꼽힌다. 러시아 우랄유는 중질유면서 황 함량이 높다. 중동산 중질유와 가장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장기적으로 수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방의 제재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한국도 2023년부터는 러시아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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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달러 vs 위안화

전 세계 원유는 미국의 달러로 결제되는 구조다. 달러가 전 세계 기축통화로 발돋움한 데도 이 영향이 크다. 이번 중동 전쟁으로 중국이 이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이란이 중국 위안화로 원유를 거래하는 선박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란 보도가 있어서다. 전문가 사이에선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페트로위안화' 시대에 대해선 의구심이 남는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실장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귀속된 경제권은 원유 거래 시 달러 대신 위안화를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중동이 미국에 군사적 안보를 위탁하고 있으니 중국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페트로위안화' 시대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태양광·풍력 vs 가스 발전

에너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가스발전 대신 원전 이용률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이 가스발전을 온전히 대체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LNG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가스발전을 급격히 줄이긴 힘들기 때문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를 쓰는 가스발전 대비 무탄소 전원이라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경직성'이다. 전원을 쉽게 껐다 켰다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24시간 가동이 어려운 '간헐성'이란 특징이 있다. 반면 가스발전은 유연성 발전원이라 전력 공급을 수월하게 조절할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가스발전은 즉각 가동이 가능하고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서 "가스발전과 같은 관성 자원이 없으면 정전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안보 위해 자원개발 필수

전문가들은 한국이 비산유국인 만큼 해외 자원개발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외 자원개발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등에 분산된 해외 자원개발 기능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경우 2004년 석유공단과 금속광업공단을 통합해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를 출범시킨 뒤 국내외 자원개발과 자원 안보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는 "현재 약 1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자원개발률을 끌어올리려면 공기업 중심의 선별적이고 효율적인 해외 자원개발이 필요하다"며 "탄소중립 정책으로 장기적으로 석유·가스 소비가 줄더라도, 현재 수준의 자원 확보만으로는 에너지 안보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용채 서울대 교수도 "해외에서 공급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정유사만 압박하는 방식은 본질을 비껴가는 대응"이라며 "탐사, 개발, 비축, 수송망 다변화까지 포함한 에너지 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유경 기자 / 강민우 기자 /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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