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문자 한 통으로 해고하는데…'한국은 왜 이래' 당황 [김대영의 노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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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회사, 저성과자 해고 단행
해고 직원 "정당한 이유 없어 부당"
대법, '개선 기회·시간' 부여 강조
"해고 직원 복직 때까지 월급 줘야"
국내 기업들은 'PIP'로 리스크 덜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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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던 A씨는 연봉 약 7300만원을 받았다. 여기엔 월별 성과급,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등이 포함됐다.

A씨는 회사에서 매년 2회 진행하는 업무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평가는 1차적으로 직속 팀장이 업무 성과와 함께 일한 동료들 피드백을 종합한다. 이어 해당 직원 강점, 개선점 등의 의견을 적고 그린·옐로우·레드 중 하나로 표시한다. 그린이 가장 좋은 등급이다. 이 결과를 한국 매니저가 검토한 다음 최종 평가 결과가 나온다.

업무 평가 최하위 직원, 권고사직 거부하자 '해고'

A씨는 입사 첫 해엔 두 차례 평가 모두 '그린'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2023년 첫 평가에서 '옐로우'를 받았고 같은 해 '레드'로 떨어졌다.

A씨는 업무 평가 외에 결정되는 '중간 순위'와 '연간 보상 순위'에서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2021년 중간 순위는 22명 중 19위, 2022년엔 51명 가운데 48위를 나타냈다. 연간 보상 순위는 2022년 30명 중 28위, 2023년엔 19명 중 18위에 그쳤다.

성과에 예민한 미국 기업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회사는 그 해 A씨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A씨가 커뮤니케이션이 미숙한 데다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권고사직 조건으로 위로금 명목의 한 달치 월급을 제시했다.

A씨는 권고사직을 거부했지만 회사는 재차 권고사직 동의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권고사직에 동의하지 않으면 해고될 것이란 내용도 함께였다. 그러나 A씨는 이번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회사는 두 달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조건을 변경하고, 이와 함께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으며 응하지 않으면 근로관계가 종료될 것이라고 알렸다. A씨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자 회사는 결국 '업무 저성과 및 업무성과 개선을 위한 노력 결여'를 사유로 A씨를 해고했다.

회사 "신입 업무도 못해"…대법은 '개선 기회' 강조

그는 법원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업무 능력이 이후에도 개선될 가능성이 없었던 상황도 아니었다고도 했다. 회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회사는 A씨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객사로부터 여러 차례 컴플레인이 접수됐다고 항변했다. "A씨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수행한 업무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면서 A씨가 활용할 수 있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했고, 부족한 업무 능력을 개선하도록 두 차례에 걸쳐 개별적 코칭을 진행한 사실도 강조했다.

회사는 "그런데도 A씨의 업무 능력은 개선되지 않았고 향후 개선될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해 해고하게 된 것"이라며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존재했다"고 맞섰다.

회사가 업무 능력 개선을 위해 노력한 사실을 강조한 이유는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에 부합한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대법원은 저성과자를 해고할 때 업무 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업무 능력이 향후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입증될 때 정당한 해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앞서 "근로자의 지위와 담당 업무의 내용, 그에 따라 요구되는 성과나 전문성의 정도, 근로자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이 부진한 정도와 기간, 사용자가 교육과 전환배치 등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를 부여했는지 여부, 개선 기회가 부여된 이후 근로자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의 개선 여부, 근로자의 태도, 사업장의 여건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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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평가 주관적…개선 시간도 충분치 않아"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재판장 정회일)는 회사가 A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회사 업무 평가가 구체적 판단 기준을 기재하지 않은 데 주목했다. 재판부는 "평가 목표, 절차, 평가 결과의 의미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평가의 구체적 판단기준은 기재돼 있지 않고 그 기준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결국 평가자의 주관적 평가가 주된 요인이 돼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A씨에게 근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를 부여한 이후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도 판단했다. 근무능력을 개선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볼 정황이 없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신입사원들이 수행하는 업무조차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제출된 증거들만으론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A씨 업무로 인해 고객사 컴플레인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오류가 A씨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법원이 해고를 무효로 보면서 A씨는 그간 받지 못한 임금도 받게 됐다. 재판부는 회사가 A씨에게 1100만원을 지급하고 복직할 때까지 월 55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문자 해고' 美 기업은 당혹…국내선 'PIP'로 대응

문자 한 통으로 직원을 내보내는 미국 기업 입장에선 우리 노동법과 법원의 판단 기준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저성과자를 해고하다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잇따르자 '저성과자 향상 프로그램(PIP)'을 도입해 대응했다.

실제 PIP를 운영한 기업들이 저성과자를 해고할 경우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적지 않게 나왔다. LG전자,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현대오토에버 등 주요 기업도 PIP를 도입한 이후 저성과자 해고의 정당성을 법원에서 연이어 인정받았다.

저성과자 해고의 물꼬가 트인 시기는 박근혜 정부 때다. 당시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 가능' 등의 내용을 담은 '양대 지침'을 발표했고 정확히 1년 뒤 LG전자에서 최초로 저성과자 해고가 적법하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후 현대중공업 사건을 통해 대법원이 처음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법리를 제시하면서 기업들이 관련 리스크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다.

다만 PIP를 도입한 경우에도 저성과자 해고에 따른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IP를 통해 해고했더라도 법원에선 이를 해고 정당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고려할 뿐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이전엔 저성과자 해고가 가능한지 여부를 두고 다툼이 있었는데 대법원에서 판결한 뒤엔 기업들로선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상당 기간 (저성과자를 위해)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해고가) 많이 엄격하고 까다롭다"며 "대법원이 낸 판결도 기준을 세웠다기보다 개별 사안에서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열거한 식이어서 매우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해고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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