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은 특유의 미적 감각과 디테일한 표현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어떤 이들은 그를 21세기 가장 뛰어나고 독특한 영화감독으로 꼽는다. 앤더슨의 지난 30년간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 프랑스 파리 12구에 위치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émathèque Française)에서 7월 27일까지 열린다.
약 500개의 작업 노트, 사진, 소품과 세트 집기, 의상, 스토리보드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앤더슨의 창의적 사고와 디테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최신 장편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까지 연대순으로 구성되어 전시장에 발을 딛는 순간 '앤더슨 스타일'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전시 기간 앤더슨의 장·단편 영화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데, 그의 영화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솔깃한 기회다.
특유의 스타일
정직한 대칭, 조율된 색상, 적절한 조명, 정교한 대화 및 사운드트랙이 세심하게 계획된 프레임은 앤더슨 영화의 특징이다. 중앙에 캐릭터를 배치하고 그 양쪽으로 거울의 반사효과처럼 대칭을 이루게 하여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화면을 선보인다. 앤더슨 영화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파스텔 톤과 빛 바랜 듯한 영상은 <프렌치
디스패치>, <문라이즈 킹덤>,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1950~1960년대의 레트로 분위기를 더 돋보이게 한다.
프랑스에 대한 사랑
앤더슨의 영화에는 유럽에 대한 사랑이 깊게 느껴진다. 그는 감독 데뷔 당시 누벨바그의 핵심 인물인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 등 프랑스 영화의 세계를 접하며 상상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 대한 사랑은 앤더슨의 작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슈발리에 호텔>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다즐링 리미티드>에서는 프랑스 가수 조 다상의 '오 샹젤리제'를 들려주며 <문라이즈 킹덤>에서는 두 주인공이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샹송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주인공 맥스는 프랑스 사진작가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 Henri Lartigue)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으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에 나오는 맨드레이크 경의 초상화도 라르티그의 사진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프렌치 디스패치>는 파리를 생각하게 하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세트 디자인은 프랑스 영화감독 자크 타티(Jacques Tati)의 <나의 삼촌>(1958)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슬픔을 의미하는 빨간색
앤더슨 영화에서 강렬한 빨간색은 종종 슬픔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로얄 테넌바움>에서 채스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고 어린 시절 버림받았던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과 두 아들에게 빨간색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게 한다. <스티브 지소와 함께하는 해저 생활>에서 스티브 지소와 승무원들이 쓰고 있는 빨간 털모자는 해양보존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해양 탐험가인 쿠스토의 캐릭터에서 따온 것인데, 극 중 지소는 바다가 앗아간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이 빨간색 털모자를 꼭 지닌다. <다즐링 주식회사>에서는 아버지가 죽은 후 삼형제가 빨간 차를 타고 떠나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빛나는 빨간색의 인테리어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카데미도 인정한 세트
아트 디렉터 애덤 스톡하우젠(Adam Stockhausen)은 <다즐링 주식회사>에서 기차 세트장에 세련된 생동감을 불어 넣었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쇼핑센터였던 버려진 아르누보 건물을 파우더 핑크색으로 칠해 환상적인 호텔을 만들며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판타스틱 Mr. 폭스>와 <개들의 섬>에 사용된 스톱 모션 인형과 미니어처 세트 모형도 전시돼 시선을 사로잡았다. 앤더슨 영화의 인형 제작부 책임자 앤디 젠트(Andy Gent)가 제작한 마리오네트 인형 앞에서는 방문객들이 각 캐릭터의 디테일에 감탄하며 쉽게 발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빈티지 소품
소품은 세트와 의상만큼이나 앤더슨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크리스 모란(Kris Moran)은 세트 장식과 소품 책임자로 영화에 필요한 완벽한 소품과 빈티지 아이템을 찾는데 힘썼다. 이베이, 중고품 매장, 골동품 창고 등에서 찾아낸 소품들을 완벽하게 배치해 앤더슨 스타일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