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매월 일정액을 연금 형식으로 받는 대출상품인 민간 역모기지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최근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역모기지 시장 활성화를 통해 국민의 노후소득 증진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올해 시중은행의 역모기지 판매 실적은 1건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공시가격 12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가구를 대상으로 한 종신 지급 민간 역모기지 상품이 출시를 앞둬 눈길을 끈다. 향후 은행권 전체로 확산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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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챗GPT |
은행권 역모기지 올해 취급 건수 0건…“제도 보완해야”
21일 은행권 및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민간 역모기지 상품을 취급하고 있는 KB국민·신한·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3사의 2025년 역모기지 신규 취급 건수는 지난달 기준 0건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잔액 기준으론 144억원 규모로, 미미한 수준이다.
범위를 좀 더 넓혀 3사의 최근 3년(2022년~2024년)간 역모기지 취급 건수를 살펴봐도 △2022년 4건 △2023년 4건 △2024년 4건으로 총 12건에 불과하다.
은행들의 역모기지론은 꽤 오래전에 등장했으나 현재는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신한은행이 2006년 역모기지 상품인 ‘미래설계 크레바스 주택연금대출’을 가장 먼저 출시했으며, 국민은행은 2008년 ‘KB골든라이프 주택연금론’을 내놨다. 하나은행의 자체 역모기지론은 지난해 선을 보였다.
이들 상품은 본인명의 주택담보 제공자와 대출약정을 체결하고 대출기간동안 약정한 대출금액에 도달할 때까지 일정금액을 연금식으로 계속 지급하는 대출 방식으로 구성됐다.
단 평생 지급 보장은 아니다. 이들 상품의 만기는 최대 30년으로, 30년이 경과하면 그간 매달 받았던 연금에 이자까지 합쳐서 은행에 갚아야 하는데, 100세 시대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근래에는 메리트가 크게 없다는 지적이다. 대출금 상환을 하지 못하면 은행은 퇴거 및 주택 경매의 조치를 취해 주거 안정성도 낮은 편이다.
김덕규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주택연금 대상에 벗어나 주택 가액이 높은 사람들이 민간 역모기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지속적인 소득을 받을 요인이 크지 않고 가계부채 관련 규제에 막혀 제약 요인도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민간 역모기지 성장 요인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규제 보완한 종신지급 연금 나온다…“업계 확산 유도해야”
이에 한은은 최근 한은·한국개발연구원(KDI) 공동 심포지엄에서 “금융기관의 역모기지 상품이 주택연금보다 유리한 조건일 경우 이에 가입하겠다는 응답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며 “민간 역모기지 상품도 경쟁력을 갖춘다면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 빈곤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역모기지 상품을 보완해 관련 시장을 보다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제도 보완 사안으로 △ 가계부채 규제를 주택연금 수준으로 완화 △종신 지급, 비소구형 상품 출시 △생명보험사의 시장 진입 장려 △정부와 민간 협회 지원 등을 제시했다.
특히 주택연금의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대출 규제의 예외 대상으로 명시돼 있으나 민간 금융기관의 역모기지 상품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및 관리 대상에 포함돼 민간 상품의 경우 충분한 연금액 지급이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하나은행은 오는 26일 ‘공시가격 12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택연금 상품을 출시한다. 지난해 12월 금융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지 약 6개월 만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민간 금융회사가 공시가격 12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를 대상으로 주택연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DSR·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주택 관련 규제에 특례를 부여한 바 있다.
이 상품은 고객이 본인 소유의 주택을 은행에 신탁한 뒤, 해당 주택에 거주하면서 부부(가입자 및 배우자) 모두 사망 시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수령한 연금 총액이 주택 처분 금액을 초과하더라도 개인에게 추가 부담을 넘기지 않는 ‘비소구’ 방식으로 설계된다. 특히 주택연금은 1주택자만 가입이 가능한 반면, 이번 상품은 2주택자도 가입할 수 있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장은 “민간 역모기지를 활성화하려면 가입자 보호 장치를 비롯해 종신 지급 및 비소구형 상품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앞으로 보다 전면적인 규제 완화 및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