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담합 6년…우리가 몰랐던 라면값의 이유 [현민석의 페어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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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밀가루 제품이 진열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요 제분사가 가격을 6년간 담합한 혐의와 관련해 심의에 들어갔다.  이솔 기자

2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밀가루 제품이 진열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요 제분사가 가격을 6년간 담합한 혐의와 관련해 심의에 들어갔다. 이솔 기자

요즘 마트 계산대 앞에 서면 주눅이 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 카트에 담긴 라면 한 묶음과 식빵 한 봉지를 보며 '이렇게 비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갑을 열기 전 망설이는 순간, 우리는 그저 "물가가 올랐구나" 하고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와 전쟁, 환율 등 탓할 이유도 많다. 과연 그게 다일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삼양사 등 7개 제분업체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6년에 걸쳐 밀가루 가격과 공급 물량을 조직적으로 담합해왔다는 것이다. B2B 시장 점유율 88%, 관련 매출액 약 5조8000억원. 우리가 6년 동안 계산대 앞에서 느꼈던 찜찜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담합, 우리 밥상으로 어떻게 넘어오나

담합은 경쟁해야 할 사업자들이 몰래 가격·물량을 함께 정하는 행위다.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면 소비자는 선택권을 잃고, 인위적으로 오른 가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밀가루는 피해 구조가 더욱 복잡하다. 가공식품 제조원가에서 밀가루 비중은 품목에 따라 20~30%에 달한다. 제분업체들이 납품가를 끌어올리면 그 비용은 농심, 오뚜기, SPC 같은 식품기업을 거쳐 최종 소비자 가격에 얹혀 우리 밥상까지 이어진다. 담합 하나가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먹이사슬을 타고 내려오는 구조다.

원재료가 내렸는데 밥상 물가는 올라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비자단체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분기부터 2025년 4분기 사이 원재료인 밀(소맥) 가격은 오히려 15.2% 하락했는데, 밀가루 소비자가격은 같은 기간 20.3% 올랐다. 원재료 가격이 내리는데도 제품 가격이 오르는 기이한 역주행이다.

담합 기간 밀가루 가격은 최고 42.4%까지 치솟았고, 담합 전과 비교해도 22.7%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밀가루 소비자물가지수 상승폭은 36.1%로,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폭을 크게 웃돌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간 식품업체들의 행태는 더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이들은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는 재빠르게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도, 원재료 가격이 떨어질 때는 인하 폭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비대칭적으로 움직였다. 담합이 제공한 가격 인상 명분에 슬그머니 편승한 것이다.

그 결과 2022년 5월부터 2025년 5월까지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4.2%, 빵은 19.4% 올랐다. 주요 라면업체들의 영업이익이 같은 기간 크게 개선됐다는 사실은 이 비대칭 행태의 수혜자가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마트에서 느꼈던 찜찜함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부당이득의 결과였다.

20년 만에 꺼낸 카드, '가격 재결정 명령'

그렇다면 이번에 공정위가 꺼내 든 카드는 무엇일까. 심사관은 7개 업체에 대해 관련 매출액 5조8000억원의 최대 20%인 약 1조1600억원 규모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가격 재결정 명령'을 조치 의견으로 제시했다.

주목할 것은 가격 재결정 명령이다. 통상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가 부과하는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되는 제재금일 뿐, 소비자 피해를 직접 회복시키지는 않는다. 반면 가격 재결정 명령은 담합으로 형성된 가격 자체를 폐기하고, 업체들이 원가와 적정 마진을 소명해 가격을 다시 산정해 보고시키는 강제 조치다. 담합 이익을 제재하고 시장 가격 자체를 정상화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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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령이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카드를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2006년이다. 당시에도 담합에 가담한 업체 상당수가 지금과 같거나 그 전신인 제분업체들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때 43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밀가루 가격이 약 5% 인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같은 업체들이 비슷한 수법으로, 이번에는 규모를 무려 130배 이상 키워 다시 담합을 저질렀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사이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집단소송이 필요한 이유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세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가격 재결정 명령 이행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업체들이 제출하는 가격 재산정 근거가 담합 이전 원가를 실제로 반영한 것인지 공정위가 검증하지 않으면 숫자 맞추기에 그칠 수 있다.

둘째, 중간 식품업체들의 편승 인상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밀가루 가격이 내려가도 라면값과 빵값이 따라 내려오지 않으면 담합 해소의 혜택은 소비자에게까지 닿지 않는다.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만 신속히 움직이는 비대칭 행태가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셋째, 피해자의 실질적 구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은 담합 피해자가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최종 소비자는 제분업체와 직접 거래한 당사자가 아니어서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개별 피해액은 수만원에 불과해 소송비용조차 건지기 어렵다. 소비자기본법상 단체소송은 금지·중지 청구만 가능하고 금전 배상은 받을 수 없다. 나홀로 소송도, 단체소송도 막혀 있다는 뜻이다.

해법은 집단소송이다. 2020년 법무부가 담합을 포함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재계 반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면 도입이 어렵다면 피해 규모가 크고 피해자 특정이 용이한 담합 분야부터라도 단계적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과징금은 국고로, 손해배상은 피해자에게. 이 당연한 원칙이 작동해야 담합이 '남는 장사'가 아닌 '망하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일상에 녹아든 담합 걷어내려면

라면 한 봉지, 식빵 한 조각. 우리가 6년 동안 별 의심 없이 사 먹은 것들 속에 담합의 대가가 녹아 있었다. 과징금으로 제분업체들을 제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격을 되돌리고, 편승 인상을 끊어내고,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20년 후 또 같은 기사를 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강산이 다시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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