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비 효율성 높이겠단 의도로 태어난 항공기
2018년부터 잇따른 추락으로 안전성에 빨간불
“생산 과정에 결함있다” 내부고발자 증언에도
보잉은 “문제없다”며 반박...품질 관리 박차
지난 한 주, 우리 지구별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토요일, 매경 글로벌경제부 기자들이 세계 구석구석의 일들을 전해드립니다. 재밌었던 소식, 가슴 아픈 일들, 읽어볼 만한 뉴스, 이전엔 몰랐던 뒷이야기까지 ‘★★ 글로벌’에서 만나보세요.
보잉 787 드림라이너, 글로벌 톱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의 역대급 인기 중장거리 항공기입니다. 2009년 처음 태어난 후 약 15년간 중대한 사고 없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10억명이 넘는 승객을 날랐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1100대 이상이 운항 중입니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기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선 대한항공이 23대, 에어프레미아가 8대를 운항 중입니다.
지난달 12일, 에어인디아의 대형 참사 전까지는 말이죠. 인도 구자라트주를 떠나 영국 런던으로 향하려던 에어인디아의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이륙한 지 약 30초 만에 추락하며 260여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사고 원인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이번 사고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보잉이 최근 안전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보잉의 또 다른 대표 기종인 737 맥스8은 2018년 인도네시아와 2019년 에티오피아에서 연달아 추락사고를 냅니다. 두 사고는 각각 189명, 157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고, 원인은 기체결함으로 밝혀졌습니다.
보잉의 안전을 의심하는 눈초리는 거세졌고, 이번 인도 사고로 그 대상이 보잉 737 맥스 8에서 787 드림라이너로 옮겨갑니다.
보잉 787 드림라이너, 탄생은 혁신 그 자체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탄생으로 돌아가 봅시다.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2000년대 초반 유가가 한창 급등하던 시기에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전 세계 항공사들은 연료비 상승에 민감했고, 보잉은 연비 효율을 최우선으로 한 장거리 항공기를 만들기로 했죠. 그것이 바로 보잉 787 드림라이너입니다.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혁신 그 자체였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알루미늄이 아닌 탄소 섬유 등 복합 소재를 주로 사용한 최초의 상업용 항공기였거든요. 또 많은 기계 공압 시스템을 더 가벼운 전기 시스템으로 대체했습니다.
경제성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셈인데, 문제는 조립 공정에도 ‘경제성’을 우선시했다는 내부 고발자들의 증언입니다. 이들은 보잉이 생산성과 제작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정을 축소하고 문제가 있는 부품들도 슬쩍 끼워 넣었다고 말했습니다.
BBC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 제작에 참여한 내부 고발자 3명의 인터뷰를 모아 보도했습니다. 일부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결함이 있는 보잉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다만 보잉사는 이런 주장을 지속적으로 부인 중입니다.
내부고발자 3명 “생산 속도 높이려 결함 있는 부품도 사용”
가장 대표적인 내부고발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보잉 787 공장의 전 품질관리 관리자였던 고(故) 존 바넷입니다. 그는 항공기를 최대한 빨리 생산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안전을 심각히 저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넷은 2019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공장 근로자들이 부품을 추적하기 위한 엄격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부품이 분실될 가능성이 있었다”며 “어떤 경우에는 근로자들이 생산 라인이 밀리는 것을 막으려고 고철 더미에서 나온 불량 부품을 항공기에 그냥 장착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항공기 갑판을 고정하는데 결함이 있는 고정장치가 사용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정장치를 나사로 고정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금속 조각들이 만들어졌고 이 조각들이 항공기 배선이 모여있는 갑판 아래 그대로 쌓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미국규제기관인 연방항공청(FAA)에 전달됐는데, FAA는 그의 주장을 일부분 인정했습니다. FAA 조사 결과 보잉 787 공장에서 최소 53개의 부적합 부품이 실종됐고, 여러 항공기의 바닥에서 금속 부스러기가 쌓여있다고 확인됐습니다.
이와 관련 보잉은 “비행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FAA의 조사 결과를 완전히 해결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시정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바넷은 한 발짝 더 나아갔습니다. 이미 운항하고 있는 항공기가 심각한 결함을 숨기고 있어 중대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것입니다. 그는 “787에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면서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바넷은 지난해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랫동안 보잉 내부고발자로서 증언하고 있었던 자신을 보잉이 압박했다면서요. 보잉 측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바넷은 세상을 떠났지만, 같은 공장의 동료 신시아 키친스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키친스는 “생산라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동하기 위해 품질이 낮은 부품도 항공기에 장착했다”며 “코팅에 금속 부스러기가 포함된 결함있는 배선 묶음을 비행기에 설치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최근엔 세 번째 고발자가 나타났습니다. 샘 살레푸르 보잉 직원은 지난해 미국 상원 위원회에 참석해 “보잉에서 관찰한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업용 항공기가 치명적 고장을 일으켜 수백 명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에 증언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품질 엔지니어인 그는 2020년 말 787 개발 과정에서 회사가 항공기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조립 공정을 단축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단축 과정으로 787 기종에 잠재적인 결함 부품과 설치 결함이 발생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자신이 살펴본 대부분의 항공기가 동체 각 부분 사이 접합부의 미세한 틈을 제대로 보완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결함은 항공기에 매우 위험한 조건을 조성해 치명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가 어림잡은 이 같은 ‘잠재적’ 위험성을 지닌 787은 1000대 이상입니다.
보잉 “부정확한 주장”이라며 반박...안정성 강화 노력 지속
보잉은 이번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확한 주장”이라고 맞받았습니다. 당연히 보잉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항공 전문가 리처드 아불라피아는 “16년 동안 운항했는데 문제가 없었다”며 “큰 문제라면 이미 드러났을 것”이라고 787 드림라이너의 안전성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생산 문제는 단기적 문제로 지난 몇 년간 보잉은 787 생산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왔다”고도 했습니다.
항공 컨설팅 회사 ‘리햄 컴퍼니’의 스콧 해밀턴 전무이사도 마찬가지 의견을 피력합니다. 그는 “아직 우리는 에어인디아 추락 사고의 원인을 알 수 없다”면서도 “지금껏 우리가 787 드림라이너에 대해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탑승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한 점은 보잉이 최근 몇 년간 생산 기준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고, 또 승객 안전보다 이윤 추구를 중시한다는 비난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보잉은 이런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지난해 켈리 오트버그를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습니다. 그는 내부 프로세스를 개편하고, 규제기관과 협력해 안전과 품질 관리 계획을 최우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