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술가 터렐 14일부터 개인전
빛과 공간의 독특한 체험 제공… 뮤지엄 산 상설전시관 등 인기
신작 ‘웨지워크’ 등 25점 선봬… “나는 빛 한조각 전하고픈 예술가”
“내가 관심 있는 ‘빛’을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빛은 분명 물리적 실체가 있지만 나무나 금속처럼 조각할 수 없잖아요. 음악가가 원하는 소리를 악기를 통해 만들어 내듯, 빛을 생산하는 악기가 필요했어요.”
터렐은 이런 고민 끝에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텅 빈 곳에 가득 찬 빛 속에 푹 잠기거나, 눈부신 빛의 파장이 먼 곳이 보이지 않도록 뿌연 장막을 만들고, 때로는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설치 작품으로 ‘빛의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1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개막한 터렐의 개인전 ‘리턴’은 ‘글라스워크’ 연작 4점과 신작 ‘웨지워크’ 등 25점을 선보인다.
터렐은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 상설 전시관이 있다. 여기서 ‘스카이스페이스’ ‘스페이스 디비전’ 등 대형 설치 작품을 2013년부터 전시해 한국 관객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서울에서 개인전이 열리는 것은 2008년 이후 처음. 갤러리 공간에서 전시하는 만큼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럼에도 빛에 온전히 빠져들어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설치 작품 위주로 전시가 구성됐다.
그의 신작 ‘웨지워크’를 감상하면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입구를 지난다. 그다음 붉은빛이 테두리처럼 설치된 공간이 보이는데, 그 속에서 또 다른 조명이 하나씩 켜지면서 공간의 형태를 관객은 서서히 인식하게 된다. 20분간 빛은 서서히 변하는데, 이 변화에 따라 빛은 마치 뿌연 연기나 얇은 장벽처럼 보여 ‘빛이 물리적 실체’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터렐은 이에 대해 “빨간색이 뜨겁고 푸른색이 차갑다고 생각하지만, 행성을 볼 때는 푸른 별이 더 뜨겁고 붉은 별이 더 차갑다. 뜨거운 별일수록 파장이 짧은 빛을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익숙하지 않았던 빛을 경험하며 어지러움을 느끼다가 그 낯섦을 견디면 긍정적인 느낌을 받으면서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시장에는 터렐이 미 애리조나 플래그스태프 인근에서 만들고 있는 대형 전시관 ‘로든 크레이터’에 관한 판화도 전시된다. 2014년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아텐 레인’을 판화로 재현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터렐은 간담회 막바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문화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K팝, 클래식 음악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한계에 도전하고 있죠. 저는 그런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빛과 예술을 사랑하는, 그저 빛 한 조각을 전하고 싶었던 평범한 예술가로 저를 봐주기를 바랍니다.” 9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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