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한 권한대행은 8일 문형배 헌재소장 직무대행, 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나흘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 탄핵 국면에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 자제” 등을 이유로 국회가 추천한 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형식적’ 임명권조차 거부했던 한 대행이 ‘실질적’ 인사권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몫 지명권을 행사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이 법제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법률 대리인 역할을 했고, 12·3 비상계엄 다음 날 ‘안가 회동’ 멤버이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한 대행 측이 헌재에 낸 의견서를 보면 대체 왜 이런 인사권을 행사했는지 더욱 궁금증이 남는다. 자신의 명의로 담화문까지 발표해 “(두 후보자를) 지명하였습니다”라고 밝혀 놓고도 “지명한 게 아니라, 장차 공직에 임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보자 발표였다”고 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헌재가 “임명 의사 공표와 동시에 그 임명 절차를 공식적으로 개시했다”며 한 대행 측 주장을 배척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판단이다.
특히 헌재는 두 후보자들이 재판관에 임명돼 헌법재판을 심리할 경우 나타날 혼란까지 지적했다. 추후 한 대행의 지명 행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 판단이 내려진다면 “두 후보자가 재판관으로 관여한 헌재 결정 등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헌재 심판 기능 등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또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위험” “헌법재판 신뢰 크게 훼손될 것”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 등의 표현을 써 가며 가처분 인용 이유를 밝혔다.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정치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무리한 일이었음이 확인됐다. 평소 신중한 일처리 스타일의 한 대행이 왜 관례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는지, 다른 곡절이 있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게 권한대행의 지명권 행사를 놓고 벌어진 정치적 논란을 말끔히 정리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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