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국가보조금 규정을 완화해 중동발(發) 연료비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취약 산업 지원에 나섰다. 지원 대상은 에너지와 비료 가격 상승으로 피해가 큰 농어업과 운송, 철강·화학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이다. EU 회원국은 늘어난 연료비 부담의 최대 70%를 보조할 수 있게 됐다. 고유가 피해 계층·기업으로 대상을 한정한 ‘핀셋 지원’이다.
EU집행위원회는 “최근의 에너지 가격 급등에는 즉각적 대응이 필요하다. 생존과 포기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겠다”며 보조금 지급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EU는 역내 국가 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 보조금을 엄격히 규제하지만, 긴급 상황일 때는 규정을 완화할 수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60일간 유럽의 화석연료 수입 비용은 270억유로(약 47조원)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고유가 피해가 하루 800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우리 역시 서민과 기업 피해가 막대할 것이다. 정부가 26조원 ‘전쟁 추경’까지 편성해 대응에 나섰지만, 문제는 지원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대표적이다.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혜택 대상을 넓히다 보니 막상 피해가 큰 취약 계층이나 기업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할 때 오히려 소비를 부추기는 부작용도 드러났다.
최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고가격제가 “개인적으로는 마뜩잖은 제도”라면서도 전쟁이 끝나고 원유 가격이 안정을 되찾아야 종료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핵 포기 합의 전까지는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지 않겠다고 하자 국제 유가는 120달러(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에 육박할 정도로 급등했다. 이란 역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이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없고, 이미 손실이 3조원이 넘었다는 정유사들에 계속 부담을 떠넘길 수도 없다. 절박한 계층과 산업에 지원이 집중될 수 있도록 정책을 재정비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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