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함께 근무하지만 딱히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가 있다. 그가 어느 날 나를 따로 불러대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뭔 수작인가 싶은 순간, 그가 10엔 동전을 꺼내 손가락으로 단번에 우그러뜨린다. 그리고 툴툴대듯이 한마디 한다면?
“사실은 말이야. 내가 외계인이거든.”
어찌 반응해야 할까. 살짝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가 평범한 50대 남성, 즉 ‘가장 외계인 같지 않은 사람’이란 점이다. 줄어드는 머리숱이 고민이고, 옛날 과자 취향을 남들이 몰라주면 속상해하는 동네 아저씨. 내가 못 믿겠다고 답하면, 그는 더 특별한 능력도 보여줄 것이다. 냄새로 물건 찾아내기, 먼 곳의 대화 엿듣기 같은.
넷플릭스에 공개된 닛폰TV의 10부작, ‘핫스팟(the Hot spot) (일본 제목 ホットスポット)’은 SF를 표방하지만, 지구 침공이나 행성 전쟁 같은 대형 스펙터클은커녕 UFO 한 대도 안 보여주는 코미디 드라마다. 외계인이란 이웃과 어쩌다 엮인 지구인들의 일상이 드라마의 진짜 관심사다.
후지산 앞 호숫가의 작은 비즈니스호텔에서 근무하는 키요미(이치카와 미카코). 퇴근하다가 트럭에 치일 뻔한 순간, 수수께끼의 남자가 번개 같은 속도로 그녀를 구한다. 그의 정체는 호텔 프런트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 타카하시(가쿠다 아키히로)였다. 어찌 된 일인지 이 시골 동네에 몰래 살고 있던 외계인.
키요미는 타카하시의 정체를 비밀에 부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어느새 타카하시는 호텔의 소소한 사건 사고에 이어, 키요미의 절친과 동네 사람들의 제법 큰 고민거리에도 나서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학교 체육관 천장에 끼어있는 배구공을 빼준다던가,
눈부신 활약이 끝날 때쯤엔 “이 메가네(안경잡이)가 외계인이라고?”라며 눈을 껌뻑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 있다. 이들은 ‘추억의 옛날 영화’, 아마도 <E.T.>(1982)의 외계인이 처했던 비극적 운명을 떠올린다. 타카하시가 정보 요원에게 납치돼 해부대에 올라가면 어쩌지?
이웃들은 온갖 꼼수를 동원하며 타카하시를 지키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 어쩌면 타카하시보다 더 특별한 것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핫스팟>은 태연하게 이들을 스쳐 지나간다. (타카하시의 표정 또한, 자신의 존재감이 이들에게 가려지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각본을 쓴 바카리즈무(마스노 히데토모)가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다. 키요미와 그 절친들, 그리고 외계인 하나가 카페에서 하릴없이 떠는 수다엔 공감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단골 식당이 유명해져서 밖에 줄이 길게 서 있다면, 언제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야 할까. 어른의 지혜란 어떤 걸까. 이거 너무 늦게 깨달으면 어쩌지.
일본에서 떠오르는 예능 방송인이기도 한 바카리즈무는 특유의 입담을 드라마에 녹여낸다. 그의 전작인 <브러시 업 라이프>(2023)에서처럼, 인물의 대화는 시청자들을 간간이 미소 짓게 한다. <브러시 업 라이프>는 한 여성이 여러 번의 환생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핫스팟>은 우리 곁의 이질적인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외계인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우려낸 주제이기에, 하마터면 밍밍한 사골 국물이 돼버릴 위험이 있다.
마을에 닥친 위기와 이를 헤쳐나가려는 전략 또한 신박함이 떨어진다. 해결 과정 또한 어떤 시청자들에겐 그저 허술하게 보일 것이고, ‘이거 너무 아마추어 아냐’ 갸웃하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인물들은 가끔 너무 착하고 순수하다. 가뜩이나 비현실적인 설정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그럼에도 이 사골 국물이 맛있게 느껴졌다면, 그 밍밍함 속에 작은 미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쳐 지나간 순간들이 막판에 결정적 퍼즐 조각이 될 때. 하찮은 내 일상에도 어떤 의미가 숨어있기를 우리는 기대하게 된다. 드라마 하나로 이처럼 즐거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실로 비범한 존재일지 모른다.
김유미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