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사 오름테라퓨틱 주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회사가 상장 두 달 만에 주요 후보물질인 'ORM-5029'의 임상 시험을 자진 중단해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오름테라퓨틱은 다른 후보물질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지만, 주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름테라퓨틱, 주가 급락에 공모가도 밑돌아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름테라퓨틱 주가(2일 종가 1만8200원)는 공모가(2만원)를 10%가량 밑돌고 있다. 상장 초반 기록한 고점 4만2250원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오름테라퓨틱 주가는 지난 2월 14일 상장한 후 같은 달 17일과 18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순항했다. 그러나 3월 들어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어 2만원대로 밀렸고, 지난달 28일에는 하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때 7700억원에 육박했던 시가총액도 380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신약 후보물질 개발 중단 소식이 주가를 짓눌렀다. 오름테라퓨틱은 지난달 28일 장중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형(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및 기타 HER2 과발현 악성종양 치료제 후보물질인 'ORM-5029'의 1상 임상시험을 자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이에 이날 주가는 하한가로 추락했다.
해당 파이프라인은 2022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임상에 돌입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임상 참여자 1명에게서 중대한 이상사례(SAE)가 발생했고, 해당 참여자가 사망했다. 이에 신규 참여자 모집을 중단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달 28일부터 매수에 나서며 '물타기 전략'을 폈지만, 손실을 면치 못한 모습이다. NH투자증권을 통해 이 회사 주식을 갖고 있는 2708명(29일 기준)의 평균 손실률은 29.49%에 달한다. 손실 투자자 비율도 95%를 웃돈다. 100명 중 95명이 물린 셈이다. 이후 주가가 더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손실률·손실 투자자 비율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상장 주관사에 대한 성토도 쏟아졌다. 오름테라퓨틱 기업공개(IPO)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은 '뻥튀기 상장' 논란이 인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의 공동 주관사를 맡기도 했기 때문이다. 파두는 2023년 기술특례 방식을 통해 상장한 후 석 달 만에 제로(0)에 가까운 2분기 매출을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다만 오름테라퓨틱은 임상 중단 위험성이 사전에 고지됐기 때문에 '파두 사태'와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오름테라퓨틱은 증권신고서에 ORM-5029가 SAE로 인해 임상이 일시 중단됐고, 중단될 수도 있음을 밝혔다. 당초 작년 말 코스닥에 입성할 계획이었지만, ORM-5029 관련 매출을 제외하고 기업가치를 재산정, 몸값을 낮춰 올해 상장했다.
그 결과, 오름테라퓨틱의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은 17대 1, 일반청약 경쟁률은 2대 1로 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ORM-5029' 관련 이슈는 상장 전 고지됐고,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도 높다고 생각해 수요 예측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관 투자자도 여럿 물려…'상장 주관' 한투증권도 원금 손실권
상장에 앞서 투자했던 기관 투자자들도 물린 상황이다. 상장 이후 KB-솔리더스, IMM, KTBN 등 여러 기관은 300만주 이상 장내서 매도했다. 하지만 아직 △인터베스트오픈이노베이션사모투자합자회사 △SEMA-인터베스트바이오헬스케어전문투자조합 △인터베스트4차산업혁명조합Ⅱ은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승주 대표를 제외한 재무적투자자(FI)의 지분율은 38%에 달한다.
주관사 한국투자증권도 손실을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오름테라퓨틱의 임상 1상에서 SAE가 발생하기 전인 작년 5월, 주당 2만1000원에 구주 14만2000주(약 30억원)를 인수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공모가를 2만원으로 정하면서까지 상장을 진행했지만,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아 손실이 커진 모습이다.
자진 취하 후 회사는 ORM-5029 대신 혈액암 치료제 ORM-1153을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선정해 개발을 이어가곘다고 밝혔다. ORM-1153은 오름테라퓨틱의 이중 정밀 표적 단백질 분해 플랫폼인 '티피디 스퀘어'(TPD²) 기술을 활용해 개발된 첫 번째 항체접합분해제(DAC)다. DAC는 항체약물접합체(ADC)를 구성하는 약물(페이로드)에 독성물질 대신 표적단백질분해(TPD)를 결합했다.
일각에선 ORM-1153에 대한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ORM-5029를 자진 철회한 상황에서 ORM-1153의 효능을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름테라퓨틱 관계자는 "ORM-5029와 동일한 페이로드를 사용하되, 항체와 링커를 교체한 혈액암 신약 ORM-1153은 영장류 비임상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ORM-1153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오름테라퓨틱은 내년 하반기 ORM-1153 임상시험계획서를 FDA에 제출할 계획이다. ORM-5209의 경우 2022년 7월 8일 임상을 신청해 같은 해 8월 5일 승인받았다. 10월 3일부터 올해까지 1상 임상이 2년 6개월간 이어졌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