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예술 거장 김인중 신부의 전시 ‘보이지 않는 색들(Couleurs de l’invisible)’이 프랑스 파리에서 남쪽으로 170㎞ 떨어진 샹보르성에서 8월 31일까지 열린다. 샹보르성은 유럽 최대의 산림 정원 안에 자리 잡고 있다. 32㎞에 이르는 담장이 둘러싼 약 50㎢ 규모의 숲에 있다.
샹보르성은 프랑수아 1세가 솔로뉴 지방에서 사냥을 즐기기 위해 지은 숙소. 당시 왕족은 거주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별장으로 이런 성들을 프랑스 전역에 건축했다. 지난달 찾은 샹보르성은 왕실 침실과 몇몇 공간을 제외하고는 가구가 거의 없이 텅 빈 상태였다. 건물 중앙의 아름다운 이중 계단을 중심축으로 김 신부의 작품들은 무심히 놓여 있다. 마치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흰 벽과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공간에서 더 빛을 발했다.
2월부터 샹보르성 입주 … 생 루이 헌정 유화 3점 제작
샹보르성은 2011년부터 약 30명의 예술가가 일정 기간 성에 입주해 작품을 창작하고 성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초대된 김 신부는 지난 2월 17일부터 이곳에 머무르며 샹보르성 수호성인 생 루이(루이 9세)에게 헌정하는 유화 신작 3점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색의 터치가 하늘로 치솟는 듯하다. 하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힘찬 기운이 생 루이의 정신과 흡사한 것 같아 김 신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됐다고 했다. 생 루이는 나라가 자기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하늘이 주신 큰 선물이라고 여길 만큼 종교와 정의를 중요시한 위대한 성인이었다. 김 신부는 “오늘날에도 이런 성인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성 3층의 900㎡ 공간에 김 신부가 프랑스와 독일의 유리 공방에서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34점(총 56피스), 유화, 도자기, 병풍, 부채 등이 함께 놓였다.
“그림이 사람들의 어둡고 우울한 마음에 희망과 위로 주길”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색상과 햇빛이 어두운 실내를 성스럽게 밝혀주는 것처럼, 김 신부는 사람들의 어둡고 우울한 마음에 희망과 위로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다고 했다. 빛은 이번 전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형 박스 구조물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광으로 순간순간 그 아름다움이 다채롭다. 패널 형식의 작품을 비추는 조명은 생기를 불어넣으며, 바닥과 벽에 유색의 그림자로 투사돼 마치 작품과 공간이 서로 어우러져 한 작품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은 김 신부의 삶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김 신부는 미국 출신 프랑스 작가 쥘리앵 그린, 중국 출신 프랑수아 쳉과 오랜 기간 두터운 우정을 이어왔다. 특히 쳉은 김 신부의 그림 위에 시를 적어 두 사람의 우정과 진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깊은 대화를 시각예술과 문학의 만남으로 표현했다. 김 신부는 이 전시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샹보르성의 숭고하고 고요한 공간에서 방문객들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찬란한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빛은 공간뿐 아니라 그들의 영혼도 밝혀줄 것입니다.”
데생도 못하던 미대생…샤갈·마티스와 어깨 나란히
김인중은 누구
천년 역사의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에서 ‘납선’을 뜯어낸 최초의 한국인 신부 화가, 유럽 38개국 50여 곳의 교회 풍경을 바꿔놓은 사람이 김인중 베드로(85)다. 유럽에선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와 함께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화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납선 기법은 동테이프로 스테인드글라스 위에 경계를 나누고 납을 붓는 방식이다. 색을 입혀 구워낸 유리를 자르고 두 장을 붙이기 때문에 물감이 번져나가지 않도록 정교한 선을 만들어야 했다. 천년간 변치 않던 방식을 혁신한 김 신부는 누구일까.
그는 서울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스위스 프리부르대와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에서 수학했다. 1974년 도미니크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수사 화가로 활동했고, 지금도 다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납선을 뜯어낸 그는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기법으로 빛을 이용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조해냈다.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려 가마에서 구워내기도 하고, 열성형 기법과 유리를 겹쳐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부조(浮彫)와 질감 효과를 표현하기도 한다.
“‘영원한 빛’인 신을 찾는 일을 하면서 어둠에 빛을 내리는 작업을 해왔지요.”
그의 그림은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이다. 그는 뿌리가 단단한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면서 납선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화풍 역시 새롭게 창조했다. 실제 수묵화에 쓰는 붓으로 유화 물감을 일필휘지로 긋는가 하면, 마티스와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원색의 다채로운 색채를 사용해 작품을 선보인다. 어린 시절 야구 선수와 배우를 꿈꿀 만큼 열정이 넘친 그는 사실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자란 첫째 아들. 충남 부여군 초촌면 소사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유학을 떠났다가 성유리화에 빠져들었다. 그가 수도복을 입고 김포공항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요즘 파리 패션이 저런가 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그가 사제의 길을 걷는 것은 온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김 신부는 회상한다.
김인중의 뿌리는 고향과 스승에 있다. 부여를 휘감는 백마강의 빛과 동네 샘물에 비치던 반짝이는 햇살, 대학 시절(그림을 잘 못 그리던 그의 데생을) 알아봐준 장욱진과 고등학교 때 미술을 가르쳐준 김철호 등을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다.
“백마강이 나에게 수평의 선이었다면 우뚝 서 있는 은진미륵 석상은 수직의 선을 알려준 셈이죠. 지금도 백마강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 강처럼 덧없이 인생이 흘러서, 바다에 가고 하늘까지 가라. 그렇게 하느님의 영광에 닿을 수 있을 때까지 흘러라’.”
그는 유럽 수도회 공방의 화가로 활동하며 윌리엄 터너, 클로드 모네, 마티스, 보나르 등의 작품도 깊이 탐구했다. 그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뽑아낸 색채와 빛에 매료됐다고. 김 신부의 작품이 설치된 교회는 얼마 안 가 유럽 전역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생쥘리앵 드 브리우드 성당은 작품 설치 후 미쉐린 가이드에서 최고 평점인 별 3개를 받고 프랑스 관광 명소 100선에 선정됐다.
김 신부의 그림이 동양화, 서양화가 아니라 ‘세계화’라고 칭해지는 중심엔 색채가 있다. 동양적인 선과 여백, 율동감이 살아 있는데, 유화지만 마치 먹으로 그린 듯한 선들이 화면을 채운다. 동시에 아름다운 원색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리듬감이 느껴진다.
샹보르=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