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나라살림 구하기[안종범의 나라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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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앞두고 정치권 선심성 공약 남발
결국은 국민 세금·국가부채로 대가 치러야
재원 검증장치 만들고 여론조사 왜곡 줄여야
재정준칙 법제화, 재정개혁 지속 추진도 필요

  • 등록 2026-05-28 오전 5:00:00

    수정 2026-05-28 오전 5:00:00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은 갑자기 산타클로스가 된다. 세금은 깎아주고 현금은 나눠주고 철도와 도로는 깔아주고 복지는 늘려준다고 약속한다. 문제는 그 선물값이 정치인의 지갑이 아니라 결국 국민 세금과 국가부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기고한 ‘포퓰리즘 거짓말 감별법’(2025.4.24) 칼럼을 통해 공약 남발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상황은 더 걱정스럽다. 각종 선심성 공약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얼마가 드는지, 돈은 어디서 마련할지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의 단기적인 경제 호재가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이 눈먼 질주에 날개를 달아줬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에 기업 실적이 일시적으로 개선되면서 주가가 상승하고 세수 증가 기대감이 커지자 마치 나라 곳간에 재정 여력이 충분한 것처럼 착각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복지지출과 국가채무는 한번 늘어나면 결코 쉽게 줄일 수 없다. 특히 급격한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급락하는 최악의 장기 재정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금 정치권의 행태는 보너스가 잠깐 입금됐다고 평생 갚아야 할 고액의 할부 계약을 마구 체결하는 철없는 가장의 모습과 다름없다.

선거가 국가의 경제와 재정을 왜곡한다는 사실은 이미 경제학계에서 오랫동안 정립된 이론이다. 이를 ‘정치적 경기순환’(Political Business Cycle)이라고 부른다.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바로 체감할 수 있는 복지지출,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늘린다. 반대로 기초과학육성, 구조개혁처럼 당장 표가 되지 않는 정책은 뒤로 밀린다. 선거로 인해 재정이 경제를 살리는 돈이라기보다 표를 얻기 위한 비용으로 낭비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역사는 선거철 포퓰리즘의 결말이 얼마나 참혹한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 대표적인 비극이 바로 재정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는 선거 때마다 무분별한 현금성 지원과 보조금 지급을 반복하다가 재정과 통화 시스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 정부지출을 감당하지 못하자 중앙은행을 압박해 화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냈고 그 결과 2023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무려 211.4%까지 치솟았다. 한때 부국으로 불렸던 나라는 여러 차례 국가부도를 겪었고 국민 상당수가 빈곤에 시달리는 만성 위기 국가가 됐다. 2010년 유로존을 흔든 그리스 재정위기 역시 철저히 선거용 공약이 누적된 결과였다. 심지어 재정적자를 축소하는 통계 조작까지 벌이다가 2009년 실제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4%로 드러나며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혹독한 구조조정 속에 청년실업률은 한때 60% 수준까지 치솟았다.

국내 사례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용인 경전철이다. 2002년 지방선거 이후 선거 때마다 지역 핵심 공약으로 추진됐지만 하루 16만 명 이용 전망과 달리 실제 개통 초기 이용객은 9000명 수준에 그쳤다. 결국 용인시는 민간사업자에게 8500억원대 배상 부담을 떠안았고 무리한 지방채 발행까지 겹치며 재정이 사실상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인천광역시도 비슷하다. 2010년 지방선거 전후 아시안게임 경기장, 월미은하레일 등 대형 공약사업이 추진되면서 재정 부담이 커졌다. 2014년 말 인천시 부채 총계는 13조 1000억원에 달했고 하루 이자만 12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을 거친 이후에야 가까스로 재정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거철 무리한 공약이 도시 재정을 10년 가까이 흔든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런 포퓰리즘을 더 부추기는 것이 무분별한 여론조사의 난립이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지지율 조사에 정치권이 과민 반응하면서 ‘표 되는 정책’만 좇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여론조사가 미래 세대 부담까지 고려한 냉정한 민심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조사 전화 자체에 응답하지 않는 무응답층이 80~90%에 달하는 상황에서 5~10% 수준의 적극 응답층 의견이 과대 대표되는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 왜곡된 결과만 쥐고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포퓰리즘의 면죄부로 삼고 있다.

나라 살림이 더 흔들리기 전에 선거철 재정 포퓰리즘을 줄일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첫째, 공약의 재정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등장한 ‘공약가계부’처럼 공약별 재정 소요와 재원 조달 방안을 따지는 장치가 필요하다. 모든 정당과 후보가 공약 발표와 동시에 필요한 예산, 재원 마련 방식, 국가채무와 재정수지에 미칠 영향을 함께 공개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국민에게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재정준칙이라는 제도적 방파제가 필요하다. 독일은 헌법에 ‘채무제동장치’(Debt Brake)를 둬 연방정부의 구조적 재정적자를 GDP 대비 0.35% 이내로 제한한다. 선거철에도 정치권이 마음대로 나랏빚을 늘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도 한국형 재정준칙 법제화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셋째, 여론조사의 과학화와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공약 선호도를 물을 때 재정 부담과 세금 인상 가능성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무응답층으로 인한 왜곡을 줄이고 일부 적극 응답층의 의견이 전체 민심처럼 포장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넷째,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재정개혁도 선거 포퓰리즘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부는 재정구조혁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민간 전문가 중심의 성과평가단을 통해 상시적 지출 구조조정 체계를 만들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선심성 공약이 대거 예산에 반영되면 이런 개혁은 시작도 하기 전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 공약은 2027년 예산안과 향후 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마지막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선거철 정치인의 달콤한 약속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오늘의 현금 지원과 화려한 개발 공약은 내일의 세금과 국가부채로 돌아온다. 이제 유권자도 “무엇을 해주겠다”는 말보다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재정이 무너지면 복지도, 성장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함께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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