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균 KAIST 교수 ‘보수 본능’ 출간
심해진 경쟁 사회와 번식 본능 결합
전세계 젊은 남성 보수 지지세 급증
능력주의 맹신 땐 불평등 심화 우려
과도한 경쟁 개선할 대책 마련 시급
지난 21대 대선은 2030 남성의 보수화를 입증한 ‘리트머스지’였다. 방송 3사가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남성의 74.1%가, 30대 남성은 60.3%가 보수 성향 후보를 지지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18~34세 남성들의 극우 정당 지지세가 급등하고 있으며, 미국도 ‘대안 우파’를 기점으로 정치적 성별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국내 인간유전체학 분야의 권위자인 최정균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동서양을 막론한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 현상을 두고 번식에 대한 인간의 본성에 신자유주의와 신다윈주의적 경쟁 환경이 영향을 미치면서 가속했다고 진단한다. 인간유전체학은 DNA 등에 담긴 유전정보 분석을 통해 각 유전자의 기능과 변이, 상호작용을 연구하며 인간의 건강과 질병·진화·개인차 등을 밝히는 학문이다.
신간 ‘보수 본능’을 출간하며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최 교수는 “특정 유전자가 집단 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관찰하려면 적어도 수십 세대가 소요된다”며 “한 세대 만에 젊은 남성들이 보수화된 것은 유전자군 변화로 설명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현상은 최근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다”며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경쟁 중심의 사회구조가 생식 적령기 남성들의 번식 욕구와 상호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에 따르면 보수성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유전적 요인들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뇌 구조가 발달하고 인지 체계를 형성한다. 권위와 공권력, 전통적 가치 같은 사회적 질서를 중시하는 까닭이다. 번식 본능은 경쟁과 직결한다. 수컷 사자와 공작이 ‘화려함’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값비싼 신호’가 번식 성공을 위한 진화적 과시 본능으로 남아 경쟁심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젊은 남성들이 멸칭으로 ‘비자발적 독신주의’(인셀)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최 교수는 “2030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화두는 번식에 성공하는 것인데, 현재 이는 경제적 성공과 동일선상에 놓이고 있다”며 “이들의 담론을 형성하는 ‘매노스피어’(남성 위주의 온라인 공간)에는 ‘20%의 능력 있는 남성이 80%의 여성을 독점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30 보수 남성들 사이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능력주의’ 성향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경쟁적 환경이 인간의 본성적 사회 지배 지향성(특정 개인·계층이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것을 옹호하는 성향)을 심화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인간의 동물적 성향은 타인의 능력과 성과를 타고난 재능으로 간주하게 한다”며 “이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고, 이를 역행하는 복지 정책에 반발하는 심리적 기제가 된다”고 부연했다.
이민자와 여성에 대한 혐오는 이 같은 성향이 반영된 현실 사례다. 최 교수는 “번식 본능에 따른 경제적 보수화는 경쟁자의 존재를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만든다”며 “남녀 갈등은 조금 더 미묘한데, 이는 번식 욕구의 대상이었던 여성이 현대 사회에서는 학업 등에서 더 뛰어난 경쟁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병역 의무는 이 같은 상황에서 막대한 손해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극단으로 치닫는 남녀 갈등의 실마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최 교수는 현상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과도한 경쟁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해소할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제언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남성 역차벌 부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달라’고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주문이다. 과거에도 20대 남성은 경쟁 기반의 보수적 성향을 가졌지만 경제적 안정과 함께 완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과열된 경쟁은 사회적 차원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과도한 경쟁 문화가 나아지지 않으면 지금 10대도 ‘이대남’ 이상의 보수적 성향을 가질 수 있다”며 “현 2030 남성의 보수화 현상은 개인의 성향이 생물학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구조적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한 단면이다. 어떤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